20여 년전, 수도자의 길을 가겠노라고 우기는 딸에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자식을 두지 못하고 가는 인생은 수렁에 빠진 홍시만도 못한 거다』 홍시는 자라는 동안 우리의 유일한 겨울 간식이었기 때문에 홍시가 수렁에 빠질 경우 어떤 몰골이 되는지 잘 아는 내겐 어머니의 그 반대가 무척 실감나게 다가왔었다. 생명(후손)에의 헌신. 이는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을 먹어본 적도, 입어본 적도, 해본 적도 없이 오로지 자식들만을 위해 한 생을 바치신 어머니의 일생을 지탱시켜준 버팀목인 동시에 어쩌면 우리 선조들의 오랜 신념이기도 하리라.
후손에 관한 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도 우리네 선조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구약시대 풍습의 대가 롤랑 드보에 의하면, 팔레스티나의 결혼풍습 중에는 신혼부부가 살게 될 집 앞에서 석류를 깨뜨리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그 속에서 튀어나오는 씨들만큼 자녀를 많이 두라는 뜻이란다. 자녀를 많이 두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이 절실하게 원하는 축복이요 영예였다. 이런 사상은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알과 같은 수의 후손을 약속 받은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는 물론이고, 시편 등에서도 여러 번 표현되고 있다.
『자식은 야훼의 선물이요, 태중의 소생은 그가 주신 상급이다. 젊어서 낳은 자식은 용사가 손에 든 화살과 같으니, 복되어라, 전동에 그런 화살을 채워 가진 자』(시편 127, 3~5). 출애굽기 1장의 마지막 절에서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이 사내아이를 낳으면 모두 강물에 집어넣어라』라는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린다. 2장은 바로 이 죽음의 문명에서 시작된다.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한 한 아기가 역설적이게도 아기에게 죽음을 내린 파라오의 딸에 의해 생명을 건진다. 그녀는 아기에게 인간적인 동정을 느껴 아버지의 명령에 불복한 것이다.
학자들은 모세의 탄생 이야기가 당시 널리 알려져 있던 영웅들의 탄생 설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출생 직후 역청을 칠한 갈대 상자에 넣어져 유프라테스 강가에 버려졌는데, 한 농부에 의해 구출되어 그의 양자가 되었다가 장성하여 강력한 정복왕이 되었다는 메소포타미아 지방 아카드 왕국의 사르곤 왕의 출생설화라든지, 통치자가 장래 자기의 적대자가 될 우려가 있는 아이를 죽이려고 하였는데 아이가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그 통치자를 이기고 위대한 왕이 되었다는 키로스 왕의 전설 등이 그런 이야기들이다.
모세 이야기를 포함한 이런 설화들은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같다고 하겠다. 즉 위대한 통치자나 은혜를 베푸는 인물들은 생애의 첫 순간부터 신의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지상의 폭군들이 아무리 그들을 해치려 해도 신의 가호로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소임을 완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마태오 복음에 전해지는 예수님의 유년기 설화(마태 2장)에서도 나타난다. 이는 마태오 복음사가가 예수님을 새로운(완전한) 모세로 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출애굽기 2장에서는 계속해서 신의 가호로 무사히 살아난 모세가 마침내 의협심 강한 청년으로 자라난 이야기를 전해준다. 의협심의 사나이 모세는 부당하게 폭행 당하는 히브리인을 남몰래 도와주려다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데, 그 사건이 들통나자 파라오가 두려워 미디안으로 도망을 친다. 하지만 모세는 수배자로 지목되어 도피한 땅 미디안에서도 의협심을 발휘하여 양떼들에게 물을 먹이려다 목자들로부터 행패를 당하는 그곳 사제의 일곱 딸들을 도와준다.
이스라엘판 「홍길동전」이라고나 할까, 모세는 아직 하느님과는 무관한 열혈 청년에 불과하다. 그는 의협심으로 행동하는 혈기파이지만 아직 진정으로 용기있는 자가 아닌, 어느 면에서는 비겁한 젊은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모세는 아직 어떤 일을 할 때 사람들의 시선만을 의식하지 하느님의 시선은 의식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만 걱정할 뿐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일을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용기있는 자는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다.
출애굽기 2장은, 이런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하느님과 첫 번째 만남을 경험했다는 매우 중요한 전승의 배경이 되고 있다. 광야에서 있었던 모세의 하느님 체험은 그의 일생을 완전히 전환시키고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전환시키는 엄청난 하느님의 이벤트이다. 여기서는 모세의 장인 이름이 「르우엘」이라 전해지는데, 다른 전승에서는 그의 이름이 「이드로」(3,1 4,18 등)였다고도 한다.
모세의 장인 이름이 역사적으로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자신이 아는 사람의 장인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더구나 당시 성서 저자에게서야 말해 무엇하랴. 사소한 것에 걸려 넘어져 성서를 거짓으로 치부하는 등의 우는 범하지 않도록 하자. 모세의 장인 이름이 각기 다른 것은 각기 다른 전승들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로 만족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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