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주간 동안 계속 우리는 주일복음으로 요한 복음서 6장의 말씀을 들었는데, 이번 주일 부터는 다시 전례주년 「나(B)해」의 본래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서의 말씀을 차례대로 듣는다. 오늘 복음은 식사 전에 손씻는 관습과 관련된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이야기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식사 전에 손을 씻느냐 안 씻느냐 하는 것은 매우 사소한 문제다. 하지만 「정결례법」(레위 11~16장)과 관련된 문제들(예컨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의 구별」 등)은 유다인 출신 신자들이 공동체의 대다수였거나, 그들이 큰 영향력을 갖고 있던 초창기 교회에서는 큰 문제였다. 특히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 과정에서 상당히 큰 파장을 가져오는 문제였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르넬리오의 현시를 비롯하여, 사도 바오로의 여러 편지들에서 나오는 「음식규정들」과 관련된 글들(예컨대 1고린 8, 8~9 로마 14, 14~15)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음식문제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초기 신자들에게 있어서, 오늘 복음에 전해지는 '손씻는 예식'과 관련된 예수님의 말씀은 그 당시 교회가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을 잡아준 말씀이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이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먹은 일을 두고 예수님께 그의 제자들이 「조상들의 전통」을 저버린다고 논쟁을 걸어온다. 여기서 「조상들의 전통」이란 모세 율법에 대한 율법학자들의 전통적 해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조상들의 전통」을 저버린다는 공박에 대하여 예수님은 입술로만 하느님을 공경한다고 하지, 마음은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던 백성과,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치는 지도자들을 질책하던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 (이사 29, 13 참조: 이사 1, 16~17)을 인용하면서, 실상 당신의 반대자들이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고 비판하신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오늘 주일 복음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인간들이 자신들의 전통적 해석을 내세워 중요한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 구체적 예를 하나 드신다. 그것이 곧 「코르반-서원의 관행」에 관한 말씀이다. 「코르반」(마르 7, 11)은 히브리어로「봉헌물」을 뜻하는데, 「코르반-서원」의 관행에 의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부모님 공경에 사용될 재산을 「코르반」즉 「성전을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 이라고 서원을 하면, 그 재산은 하느님께 바쳐진 거룩한 것으로 간주되어, 부모님 공경에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코르반-서원」이라는 관행을 교묘하게 내세워 정작 「부모를 공경하라」는 중요한 하느님의 계명을 사람들이 어기고 있음을 지적하신다. 부모공경은 입술로만이 아니라, 물질적, 신체적 공경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코르반-서원의 관행」 악용하여 자녀된 의무를 저버리고 있는 위선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군중들과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하느님과의 친교를 참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정결함」이 과연 무엇인가』에 관하여 그들을 가르치신다. 예수님은 당신의 반대자들이,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과 같은 사소한 규정을 사람들이 지키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날카롭게 관찰할 줄 알면서도, 또 그러한 규정을 지키는 데에는 그토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그러한 행위들이 생겨나는 근거요, 그렇기에 훨씬 더 중요한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대하여는 오히려 소홀히 하고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하신다. 마음속은 악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닦으려고도 하지 않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비판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15절). 루가 11, 39~40의 다음 말씀도 같은 맥락에 있다: 『지금 너희 바리사이들이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지만 너희 속은 착취와 사악이 가득 차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아, 겉을 만드신 분이 속도 만드시지 않았느냐?』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비판하신 것은 「조상들의 전통」에 따른 규정들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전통적 규정들을 지킨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 규정들이 본래 의도하였던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고 있던 사람들의 「굳어진」마음이었다. 사실, 코르반-서약의 전통도 본디 하느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섬기고, 하느님의 계명을 더 잘 지키기 위해 생겨난 전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전통이 오히려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 도구로 사용되는 결과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마음이 비뚤어져 있으면 아무리 훌륭한 계명과 훌륭한 제도도 「악의 도구」로 악용될 수가 있다는 점을 본다.
하느님의 계명을 더 잘 지키려고 시작한 일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적 욕심이 담긴 이러 저러한 해석이 덧붙여져, 오히려 그 「하느님의 뜻」을 가리게 하는 때가 있다. 일찍이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은 이 점을 신랄하게 지적하였는데, 오늘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라 하더라도, 혹시라도 그 일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의 뜻」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교회는 늘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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