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진골 옹당촌에 사는 옹고집이라는 이는 매사에 고집이 심한 데다가 심술이 사납고 인색해서 탁발승을 쫓아내고 병든 팔순 노모를 박대하는 등 행패가 자심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월출봉 취암사의 도사는 그를 혼내주기 위해 도술을 부려 허수아비로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마을로 보낸다. 곧바로 옹고집의 집을 찾아간 가짜 옹고집은 자신이 진짜 옹고집이라 주장하는데. 아들, 며느리는 물론 아내까지도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였다. 한바탕 소동을 치른 후 마침내 관가에 가서 진위를 가리기로 하고 원님 앞에 나가 시험을 보는데, 집안 사정이며 족보며 가짜가 진짜보다 더 밝은 것이 아닌가. 원님이 가짜 옹고집을 진짜로 판정할 밖에. 드디어 가짜 옹고집은 진짜 옹고집을 내쫓은 후 그의 아내와 더불어 아들, 딸까지 낳고 행복하게 사는 반면 진짜 옹고집은 걸인이 되어 사방을 떠돌게 된다. 마침내 진짜 옹고집이 갖은 고생을 다 겪다 비관하여 자살하려는 찰라 예의 그 도사가 나타나 그에게 부적을 주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집에 돌아온 진짜 옹고집이 부적을 던지니 가짜 옹고집은 초인(草人)이 되고 가짜 옹고집의 아이들은 짚뭉치로 변한다. 그제야 옹고집 집안은 참회하고 참 신앙인(불교)이 된다.
조선시대 판소리 계열의 풍자소설 「옹고집전」(壅固執傳)의 줄거리이다. 출애굽기 7장 이하의 파라오는 우리네 고전에 나오는 이 옹고집 영감을 연상시킨다. 둘 다 사람의 말(人倫)도 하느님의 말(天倫)도 도무지 듣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만 살다가 엄청난 재앙을 겪고 난 후, 비로소 하늘의 뜻에 굴복하게 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두 이야기는 인물의 행동 면에서는 「고집→재앙→회개」라는 동일한 구조를 보여주지만, 그러한 행동의 동인(動因)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파라오의 완고함에 대해 언급할 때 「파라오 자신이 마음을 완고하게 만들었다」거나 「파라오의 마음이 완고해졌다」는 표현과 함께 「야훼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드셨다」라는 표현이 상당히 자주 나오는 것이다. 파라오의 행동의 동인(動因)이 그에게 있지 않고 야훼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의지대로 고집을 부린 것도 아닌데 재앙을 겪는 파라오는 억울한 피해자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성서저자의 이러한 표현은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나 예정설 등을 말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살아서는 신의 아들을 자처하고, 죽으면 신으로 떠받들리는 파라오는 물론 그가 다스리는 이집트조차도 실은 전적으로 야훼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야훼께서 파라오를 완고하게 만들고 온 이집트를 재앙으로 뒤덮으심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당신의 이름을 온 땅에 알리시기 위함(계시)인 것이다.
야훼계 전승과 사제계 전승이 혼합된 이 재앙 이야기는 1)나일강 물이 부패하고 피가 되는 재앙(7,14-24), 2)개구리 재앙(7,25-8,11), 3)먼지가 모기로 변하는 재앙(8,12-15), 4)등에 재앙(8,16-28), 5)가축병 재앙(9,1-7), 6)피부병 재앙(9,8-12), 7)우박 재앙(9,13-35), 8)메뚜기 재앙(10,1-20), 9)어둠 재앙(10,21-29) 외에 선포되기만 하고 실현되지는 않은 채 유월절 사건 이야기로 넘어가는 열번째 재앙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재앙을 제외한 아홉 가지 재앙 이야기에는 일정한 틀이 있다.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라는 야훼의 요구(이를 파라오에게 전하는 것이 모세가 받은 사명이다) →파라오의 거절과 재앙의 통보 → 재앙의 실현 → 파라오의 간청(재앙이 일어날 때마다 모세를 급히 불러 재앙이 멈추도록 빌어달라고 청한다)」이 순환되는 패턴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무려 아홉 번이나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파라오의 마음은 여전히 완고한 채로 남아있다. 성서저자의 원 의도와는 조금 다르지만, 파라오의 고집에 대한 안셀름 그린의 묵상은 퍽 인상적이다. 다음은 그의 책 「성서에서 만난 변화의 표징들」에서 조금 자유롭게 베꼈다.
『이집트 재앙을 완고한 마음을 가진 한 인간의 부정적 변화에 대한 표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은 가시덤불을 빛으로 변화시키나 미움과 완고함은 빛을 어둠으로, 생명을 죽음으로 변화시킨다. 이집트 재앙은 우리 삶이 어떠한 경우라도 반드시 변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느님께서 일으키시는 변화에 우리 자신이 따르지 않을 때, 우리 안에는 나쁜 방향으로의 변화가 일어나며, 우리 영혼의 온갖 세력들이 우리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생명의 표지로서의 물이 피로 변하고, 삶이 죽음을 호흡한다. 모기와 메뚜기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천둥과 번개가 우리 영혼의 곳곳을 경련시킨다. 마침내 모든 것이 암흑에 잠길 때까지. 이집트 재앙은 한 사람이 어떻게 악인과 병자로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부정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생각하셨던 변화의 길을 가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그것은 생명과 자유로의 변화, 빛과 아름다움으로의 변화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