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기 자신이 자신에게 낯선 존재이다. 자기의 참된 모습이 자기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알려지지 않은 채 감추어져 있는 자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을 알게 된다. 사람이 자신을 알면 생명을 얻고 자신을 모르면 생명을 잃는다. 그러기에 자신을 아는 지혜 만큼 사람에게 소중하고 필요한 지혜도 없다. 그러나 자신을 아는 지혜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얻기 어려운 지혜이기도 하다. 신을 아는 지혜는 사람이 가장 애착하는 자기 만족을 버려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이다. 『만일 우리가 죄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진리를 저버리는 것이 됩니다』(요한Ⅰ1, 8)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감추어져 있는 것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죄의 속성자체가 어둠 속에 제모습을 감추고 숨는 데 있다. 죄는 사람의 생각이 접근할 수 없는 어둠 속에 제 모습을 감추고 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죄를 식별하는 감각이 있다. 그리고 이 죄를 식별하는 감각은 하느님을 감지하는 감각과 짝을 이루고 있다. 우리의 마음 속에 하느님을 감지하는 감각이 살아 있을 때 죄를 식별하는 감각도 살아 있게 된다.
사람은 자기의 생각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두 신비의 영역을 대면하고 있다. 하나는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없는 빛 가운데 계신」(디모테오Ⅰ 6, 16) 하느님의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짙은 어둠 속에 자신을 감추고 있는 악의 영역이다.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빛을 받아야만 자기의 생각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이 두 신비의 영역을 볼 수 있게 된다.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는」(에페소1, 18)하느님의 빛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신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어둠속에 제모습을 감추고 숨어있는 죄를 드러내어 밝힌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감지하는 감각이 예민할수록 우리 안에 있는 죄에 대해서 더 예리한 감식력을 갖게 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예리한 빛으로 죄에 대해서 가장 예민한 감식력을 가졌던 분들이 성인들이다. 성인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분들이다.
마음의 눈이 하느님의 빛으로 밝혀질 때, 사람은 하느님과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느님의 빛 속에서 자신을 볼 때는 자기의 비천함을 보기 때문에 교만과 자애심을 버리고 겸손과 자기 이탈의 정신을 얻게 된다. 동시에 하느님을 볼 때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보기 때문에 하느님을 더 완전히 믿고 바라고 사랑하게 된다. 바로 여기에 영성생활의 요체가 있다. 이렇게 해서 자신을 아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사람이 하느님께로부터 이탈하면 할수록 죄를 식별하는 감각이 무뎌지게 된다. 마침내 하느님과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단절되면 죄를 식별하는 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가장 절망적인 죄인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죄중에 있으면서도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는 터무니없는 확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자기의 참된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거짓된 자화상을 만들어 낸다. 실제의 자기는 무지하고 무능하고 비천한 죄인임에도, 이 자화상 속의 자기는 지혜롭고 유능하고 위대한 의인이 된다. 이 거짓된 자화상은 자기의 교만과 자애심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사람은 그 속에서 흡족한 자기만족을 누리게 된다.
죄는 회개함으로써만 용서받는 길이 열린다. 회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은 자기의 죄를 인식하는 것이다. 자기의 죄를 인식하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회개가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속에서 죄를 식별하는 감각이 죽으면 그 사람은 회개가 불가능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눈은 빛이 있어야 볼 수 있다. 건강한 눈은 빛을 보는 것이 즐겁지만 병든 눈을 빛을 보는 것이 괴롭다. 그래서 건강한 눈은 빛을 반기지만 병든 눈은 빛을 피한다.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은 죄다. 죄로 병든 마음의 눈에는 하느님의 빛이 괴로움을 준다. 모든 죄의 근원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교만과 자애심이다. 사람에게 자기의 죄를 보게 함으로써 자기의 비천함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빛은 교만과 자애심을 손상시키는 타격이 된다. 그래서 죄를 버리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의 마음은 하느님의 빛을 배척하고 거부한다. 죄인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 하느님의 빛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주님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빛이시다. 죄의 어둠 속에 잠겨 자기의 모습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볼 수 있는 빛을 주러 오시는 분이 주님이시다. 이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회개하여 생명을 얻고, 이 빛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죄인으로 단죄를 받는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과연 악한 일을 일삼는 자는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봐 빛을 미워하고 멀리한다』(요한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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