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은 감춰 둘수록 더 아름답게 빛난다. 반면에 드러내서 알리려고 하면 그 아름다움을 잃는 것이 선행이다. 자기 스스로 드러내서 알리는 선행은 선행의 가치를 잃게 된다.
선을 행하는 것 못지않게 선을 행한 후에 그 선행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기의 선행을 안전하게 보존하려면 선을 행한 다음에 즉시 그 선행을 잊어버려야 한다. 사람이 자기의 선행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해롭다. 그것은 사람이 자기의 선을 알게 되면, 그 선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잊고, 교만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선은 무한한 선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온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선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자기의 선을 보고 그 선의 참된 주인이신 하느님을 찬미해야지, 그 선이 자기의 것인 양 자기를 자랑해선 안된다. 자기의 선을 보고 스스로 자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남에게 칭찬받고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교만이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의 선행이 남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채 있으면 기분이 상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알릴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자기의 선행이 알려져서 칭찬받고 존경받게 되면 흡족한 마음으로 자기에게 돌아오는 영예를 즐긴다. 이렇게 되면 선행은 선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되고 오히려 교만을 키우는 수단이 된다. 교만은 모든 선을 부패시키는 독이다. 교만으로 오염된 선은 부패해서 선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그러기에 사람이 참으로 선하려면 자기가 선하다는 것을 모르면서 선해야 한다. 완전한 선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닮아 선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악으로 추락하지 않고 선한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완전한 길을 가르쳐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을 따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창세기 3, 17)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선을 아는 것도 악을 아는 것도 위험했기 때문에 선과 악을 모르게 하셨다. 아담과 하와는 선했다. 선을 몰랐지만 생각하는 것이 모두 선했고 원하고 행하는 것이 모두 선했다. 자기가 선하다는 것을 모르면서 선했기에 참으로 선했고, 자기가 선을 행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면서 선을 행했기에 참된 성덕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이 자기가 선하다는 것을 알면 교만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교만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선을 부패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선을 알지 말라고 하셨다. 사람이 악을 아는 것은 위험했다. 악한 행동은 사람의 감성과 감각에는 달콤한 쾌락을 주지만 그 대가로 돌아 오는 것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악을 모르면 악을 원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악을 알게 되면 선보다는 악을 더 원하게 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악을 알지 말라고 금하셨다.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모르는 동안은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느님의 종으로 머무는 동안은 사람이 일체의 욕망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와에게 유혹자 사탄이 다가온다. 사탄은 선과 악을 알도록 유혹한다. 먼저 선을 앎으로써 자기의 선에 대해 자만하게 만든다. 자만에 빠짐으로써 교만해진 사람은 하느님께 불순종하게 된다. 동시에 사람이 감성과 감각에 쾌락을 주는 악을 알게 한다.
악을 알게된 사람은 억제할 수 없는 갈증으로 악을 원하고 맛보게 된다. 이렇게 하느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악을 맛본 사람은 하느님의 종이 아니라 교만과 탐욕과 육욕이라는 욕망의 노예가 된다. 사람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하느님의 종이 될 때는 일체의 욕망을 지배하는 왕이 되지만,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면 오히려 욕망의 지배를 받는 노예가 된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신다. 성모님의 이 순종은 하와의 불순종을 무효화시켰고 구세주를 세상에 모셔 오게 했다. 모든 피조물 중에 성모님만이 유일하게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시다. 피조물로서 하느님께 받을 수 있는 모든 선을 완전하게 받으신 유일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복음이 증언하는 대로 성모님은 당신이 그렇게 위대한 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모르신다. 성모님은 선도 악도 전혀 모르면서 선하셨기에 완전히 선하셨다. 그러기에 절대적인 순결과 겸손과 가난을 지님으로써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에 합당한 유일한 분이시다. 성모님은 인간의 일체의 욕망과 감정을 완전히 지배하여 하느님의 뜻에 복종시킨 하느님의 완전한 종이시다.
완전히 겸손하고 순결하고 가난한 성모님의 마음은 하느님의 완전한 거처가 되신다. 우리 모두 성모님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으로 하여 하느님을 우리 마음에 영접해 드리도록 하자.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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