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의 놀라운 인물 이솝의 우화 한 편. 독수리와 여우가 서로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독수리가 높다란 나무 위에 둥지를 틀자 여우는 바로 그 나무 밑 덤불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그러던 어느 날, 여우가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간 사이에 역시 먹을 것이 부족했던 독수리가 덤불 속을 뒤져 여우의 새끼들을 잡아다가 자기 새끼들에게 먹여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알게 된 여우는 분해서 복수를 하려 했으나 복수할 길이 없었다. 땅에 사는 짐승인 여우가 날개 달린 독수리를 쫓아가 잡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후, 여우에게 복수의 기회가 온다. 사람들이 염소를 제물로 바치며 제사를 드리고 있을 때 독수리가 제단을 내리 덮쳐 불에 타고 있던 염소의 내장을 낚아채서 자기 둥지로 날라 왔는데 마침 세찬 바람이 불어와서 염소 내장에 붙어 있던 불씨가 독수리 둥지에 옮겨 붙고 만 것이다. 아직 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독수리 새끼들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불붙은 둥지에서 벗어나려고 하다가 그만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것을 본 여우는 얼른 달려들어 독수리 의 눈앞에서 그 새끼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워 버렸다.
이솝의 이 우화는 힘이 약한 상대의 우정을 배반할 경우, 당장에는 복수를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하늘의 복수를 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언뜻 보면 승리는 늘 힘센 자의 차지 이고 약한 자는 당하기만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긴 안목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정의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비록 그분이 정의를 실현하시는 방법이 인간의 그것과는 달라서 우리의 눈으로는 금방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출애굽기 13-14장에 나오는 히브리 민족의 탈출 이야기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해볼 수 있을 것 이다. 근동의 패권자 이집트의 파라오와 그에게 강제노동을 당하는 약소민족의 백성들 사이에는 애당초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파라오의 노예생활을 하던 히브리 백성들은 하느님의 섭리하심과 모세의 인도로 천신만고 끝에 이집트 땅을 탈출하지만 파라오는 군대를 시켜 그들을 추격하게 한다. 그런데 파라오의 군대에게 쫓기는 노예들의 앞을 바다가 가로막는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말 그대로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하늘은 결코 약자들의 울부짖음을 흘려듣지 않으신다. 어찌된 셈인지 강력한 이집트 군은 추격 도중 섬멸당하고 도망치던 허약한 무리 이스라엘은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편에 서서 싸워주셨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이 히브리 민족의 탈출사건은 해방신학의 기본 텍스트가 된다. 하느님은 약자를 도와 그들에게 자 유와 해방을 주시는 정의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제3세계의 사람들에게 있어 구원이란 자유와 해방이며 하느님은 정의의 하느님으로 체험된다는 것이 해방신학의 입장이다. 출애굽기 13-14장의 탈출 이야기도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그 구성이 상당히 복잡한데 그 이유는 탈출사건이 실제로는 몇 번에 걸쳐 이루어졌고, 그 체험들이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르게 전해 내려 왔기 때문이다.
출애굽의 최종 편집기자는 이처럼 서로 다른 체험과 전승과정을 가진 야훼계(J), 엘로힘계(E), 사제계 (P)의 출애굽 전승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여 서로 모순되는 부분이 있어도 그것을 삭제시키지 않고 모두 끼워 넣고자 하였다. 따라서 출애굽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일치되지 않거나 상반되는 부분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출애굽 기자는 과월절 밤에 관한 보도에서 이미 고집쟁이 파라오가 이스라엘의 해방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4장 5a절(E)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도주 소식이 파라오에게 전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파라오가 전혀 알지도 못하고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뒤를 잇는 5b절에서(J)는 다시 파라오가 탈출을 허락 내지는 묵인했다가- 마음이 달라져서 추격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5a절보다는 오히려 과월절 밤의 보도와 더 잘 부합되는 설명이다.
하느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현상도 전승에 따라 다르게 보도된다. E계 전승인 13장 19a절에 의하면 인간 편에 서서 인간을 돕는 「하느님의 천사(使者)」로 나타나는데 반해 J계 전승인 13장 21-22절에 의하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타난다.
한편 이집트 군의 섬멸은 P계 전승이 가장 장엄하게 묘사하고 있다. P에 따르면 바다가 갈라진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먼저 건너가고 그런 다음 이집트 군대가 그 뒤를 쫓아 건너려고 하다가 몰살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반면 J는 이집트인들이 하느님 임재에 공포와 경악을 느끼고 혼비백산하여 스스로 바다 속에 휩쓸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뿐만 아니라 J는 이스라엘이 이 사건을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라 이튿날 해변에 떠 있는 이집트인들의 시체를 보고 야훼의 위대한 구원행위가 완수되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밝힌다. 살다 보면 우리는 하느님의 정의가 우리의 생각 또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실현됨을 체험하게 된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각자의 하느님 체험을 기억하고 증언하고 전달함으 로써 시공을 초월한 공통의 하느님 체험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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