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 일에 발을 들여놓은 지 만 43년인 지난 10월 29일 은퇴미사를 봉헌하고 정년 퇴임한 서울 묵동본당 김형보 (노렌조.71) 사무장.
함경남도 덕원신학교를 다니던 중 6.25를 맞아 산 속에 숨어 지내다 지나가는 흑인병사에게 손을 흔들며 나선 길이 그도 예상치 못한 삶의 시작이었다. 포로 취급을 당해 보내진 곳이 고향 황해도 해주에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거제도 포로수용소였다. 한동안 넋 놓고 지내다 나선 일이 포로를 대상으로 한 전교활동. 천막교회를 세우고 사제의 도움을 받으며 하루에도 수백명의 포로들을 만나러 다녔다. 논산 수용소로 옮겨 석방되기까지 그가 영세받게 한 이만 줄잡아 5000여명이 넘는다.
1957년 춘천교구 퀸란 주교의 부름으로 6.25의 참화가 채 가시지 않은 동해 묵동본당에서 시작한 전교회장 일이 그가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내디딘 첫걸음이었다. 전교회장을 맡자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주보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가 춘천교구 최초로 만든 주보 이름은 「교보」. 손수 등사판을 밀어 펴낸 주보의 힘은 컸다. 처음 전교를 시작할 때 70명 안팎이던 신자는 그가 소양로본당으로 옮기기까지 9년 사이 2000여명으로 불어났다. 자녀 교육문제로 발을 들여놓게 된 서울에서도 그의 주된 삶은 전교였다. 신설된 장위동본당에서 등촌동본당, 묵동본당에 이르는 그의 길은 전날 사무장 일을 그만 두면 다음날 새 본당으로 출근하는 꾸준함이었다.
『밀가루 3포가 월급이었던 때가 있었지요』
2남3녀, 자신의 삶도 버거운데 남의 삶에 뛰어든다는 것은 용기 이상의 것이 필요한 일이었다.
환갑과 고희를 넘기면서도 본당 청년들과도 말이 통할만큼 젊은 생각을 지닌 그는 깊은 신앙만큼이나 겸손하고 재미있는 이로 알려져 있다.
『하느님을 믿고 선행을 하면 언젠가 하느님 품안에서 다시 만날 수 있지 않겠니』. 그는 북에 남은 아버지의 말씀을 늘 새기며 살아왔다고. 아버지와의 약속을 꿋꿋이 지켜온 지난 삶이 감동에 겨운지 그의 눈망울은 잠시 흐려지기도 했다.
교회와 함께 한 50여년, 그간 그가 이끈 영세자만 6명의 사제를 포함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선다. 현대 한국교회와 함께 해온 것이나 다름없는 길, 그러면서도 해외성지순례 한번 다녀올 엄두를 내지 못한 그의 길은 감동 이상의 것으로 다가온다.
「하느님을 열심히 공경하자」단순하기까지 한 그의 좌우명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건 그의 삶 때문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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