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거느리고 왜선 몇 백 척을 바다에 침몰시켜 일본군을 참패시 키고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명장 이순신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분은 위대한 업적 으로만이 아니라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아(大我)를 살리는 말씀으로도 후세인들의 심금을 울린다. 그 유명한 우수영 대첩에서(1597) 그는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오히려 살고 살고자 하면 도리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 라는 말로 장령들을 고무하였다. 또한 왼쪽 가슴에 적의 탄환을 맞아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내가 죽은 것을 알 리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하였다. 이 유언은 얼마 전 『내가 왕자임을 남에게 알리지 말라』라는 「이순신식 왕자병」라는 유머로 둔갑하기도 했다.
파라오의 군대가 덮칠 듯 뒤따라오자 『이집트에는 묻힐 데가 없어서 우리를 여기에서 죽이려는 것이냐?』라고 원망하며 대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두려워 말라. 움직이지 말고 오늘 야훼께서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보아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주실 터 이니 모두들 진정하여라』 (출애 14, 13~14)라고 소리쳤었다. 오늘 살펴볼 15장에서는 아예 하느님을 일컬어 야훼는 전쟁의 용사(3절)라고 부른다.
이어서 시인은 홍해 대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고백한다. 『그 이름 야훼시다. 파라오 의 병거와 군대를 바다에 처넣으시니 빼어난 장교들이 홍해바다에 빠지더라. 깊은 바다가 덮치 니, 깊은 물 속에 돌처럼 잠기더라. 바다가 그들을 덮어버려 모두들 거센 물결 속에 납덩이 처럼 잠겼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만방이 술렁거립니다. 블레셋 주민은 겁에 질리고 에돔의 두목들은 놀라고 모압의 권력가들은 떨며 가나안의 주민들은 모두 기가 죽었습니다. 모두들 당신 팔을 보고 돌처럼 말문이 막혔습니다』
야훼는 우리 선조 이순신 같은 수군 명장이신가? 우리는 구약의 하느님은 정의의 하느님으로 주로 벌을 주시고, 신약의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으로 한없이 자애로우시다고 생각하는 향이 있다. 성서 자체에 싸우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나오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 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출애굽 15장을 비롯하여 판관기 등에서 자주 언급되는 「야훼의 전 쟁」에 대한 그릇된 이해는 이른바 「성전」(聖戰)개념을 낳게 된다. 오늘날도 세계 각처에서 신의 이름을 앞세운 비열한 성전(聖戰)의 피비린내가 사라지지 않고 있기에 「야훼의 전쟁」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그 성격을 살펴보았으면 한다. 사실 성서에는 「성전」(聖戰)이라 는 말마디는 나오지 않는다. 야훼께서 수행하시는 전쟁(이하 「야훼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있을 뿐이다.
야훼의 전쟁은 무엇보다도 방어전(防禦戰)의 성격을 지닌다. 야훼는 억압받고 부르짖으며 도망치는 약자를 지키고 방어하시기 위해 전쟁에 나서신다. 15장에서 야훼가 섬멸시키시는 파라오는 불의한 지배권력의 상징이며 그 군대는 바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 즉 약자 의 좥원수좦이다. 다음으로 야훼의 전쟁에서 실제로 싸움에 임하는 주체는 야훼 자신이시다 . 이스라엘에게는 다만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 도망치지도 않고 굳건히 서서 야훼께서 어떻 게 구원하시는지 지켜보는 역할이 맡겨질 뿐이다.
다시 말해 야훼의 전쟁은 야훼와 백성의 협력전이 아니라, 백성은 지켜보기만 하고 야훼 홀로 수행하시는 전쟁이라는 것이다. 여기 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야훼만이 영원히 다스릴 왕」(18절)이시라는 데 대한 절대 신앙이다. 그분은 우리더러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라시지만 신앙 없이는 그 누구도 위기 앞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사실 위기의 때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믿기만 하며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훼께 대한 절대신앙이 필요한 것이다.
임마누엘 예언으로 유명한 이사야 예언서 7장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시리아와 북왕국이 동맹을 맺고 힘을 합해 남왕국 유다를 쳐들어오는 위기상황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아하즈 왕에게 이렇게 야훼의 말씀을 전한다. 『진정하여라. 안심하여라. 겁내지 말라. 그 들이 격분한다고 해서 정신을 잃지 말라. 그들은 연기 나는 두 횃불 끄트머리에 불과하다.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결코 굳건히 서지 못하리라』(이사 7, 4~9 참조). 한마디로 정신을 차리고 그 상황을 두고 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역사하심보다 인간적인 전략을 더 믿었던 아하즈 왕은 이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왕의 불안을 눈 치챈 예언자는 왕에게 징조를 청하라고 권하고 징조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준다.
무위(無爲)의 경지는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놀고 먹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 연의 법칙(조물주의 뜻)에 따라 사는 진정한 도(道)의 경지일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훼의 전쟁은 우리에게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또는 매사에 인간적인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절대신앙으로 그분의 역사하심을 믿으며, 바라며, 기다리는 신앙인의 무위를 가르쳐 준다 하겠다.
21절의 미리암의 노래는 출애굽만이 아니라 성서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오래된 전승의 하나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결국 그 앞에 나오는 모세의 노래보다도 시기적으로 휠씬 오래 된 전승인 셈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모든 기록문화가 그러하듯 성서 역시 남성중심적 묘 사로 일관되어 있어 미리암의 행적은 단편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남성중심적, 가 부장적 전통이 그 어느 문화보다 중요시되는 근동에서 여인의 행적이 이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는 것은 출애굽 사건에 있어서 미리암의 지도적 역할이 상당히 대단한 것이었을 거라 는 추론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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