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인생은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살아온 세월의 추억들이 그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
사람은 시간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고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서 과거로 사라진다. 사람이 살아온 시간은 과거로 사라지지만 그 시간을 살아온 삶은 사라지지 않고 기억 속에 남는다. 기억은 사람이 자기의 삶을 갈무리하는 창고이다. 사람이 이 기억이라는 창고를 어떤 추억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게 된다.
사람이 기억을 선한 추억으로 채우면 선한 인생을 살게 되고 악한 추억으로 채우면 악한 인생을 살게 된다. 그리고 사람은 스스로 원하는 추억을 선택해서 기억속에 간직할 수 있다. 선한 사람은 악한 추억을 잊고 선한 추억을 간직한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선한 추억을 잊고 악한 추억을 간직한다. 선한 기억을 간직하면 선한 인생을 살게 되고 악한 기억을 간직하면 악한 인생을 살게 된다.
사람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느냐에 따라 의인이 되기도 하고 죄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사람이 선하고 필요하고 이로운 추억은 잊어 버리고 악하고 필요없고 해로운 추억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일예로 사람은 마땅히 남에게 받은 은혜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고 상처는 기억하지 말고 잊어야 한다. 그러나 상처는 잊질 못하고 은혜는 쉽게 잊어 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이 은혜를 기 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의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은혜를 잊고 감사할 줄 모른다면 은혜를 모르는 불의한 사람이 된다.
한편 남에게 받은 상처는 기억하지 말고 잊어버려야 한다. 상처를 기억하고 있으면 증오심을 품게 되고 증오심은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 그러나 상처를 기억하지 않고 잊을 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 그리고 용서하는 마음에서 가장 거룩한 사랑이 솟아난다. 사람이 일체의 모욕과 상처를 잊고 감사할 것만 기억한다면 마음 속에 언제나 선과 사랑과 아름다움만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잊어야 할 것을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것을 잊는 까닭은 이기적인 자아를 중심으로 기억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기억의 중심에 언제나 이기적인 자아가 있어서 이기적인 사랑에 합치 되는 것은 기억하고 이기적인 사랑에 상치되는 것은 잊는다.
이렇게 자기자신과 자기의 요구만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기적인 인생을 살게된다. 이런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온통 자기 자신에게만 집념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생각과 말과 행동의 중심에 언제나 자기 자신이 있게 된다. 이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든 결코 자기를 잊는 적이 없고 언제나 자기를 생각하면서 행동하기 때문에 일체의 행동이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오직 자기가 더 알려지고 인정받고 명예롭게 되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행동한다.
사람이 이렇게 자기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되면 그 사람의 영혼은 사랑이 고갈되어 메마르고 황폐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이 없이 사는 인생은 사막보다도 더 적막하고 황량한 것이 된다. 영원한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을 닮아서 사랑하는 존재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사람은 사랑하는 존재로 창조되었기에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람은 두 개의 사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사랑하게 된다. 하나는 자기를 잊게 하는 하느님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을 잊게 하는 자기 사랑이다.
사람은 자기를 잊는 만큼 자기를 하느님께 바치게 되고 자기를 하느님께 바치는 만큼 더 완전히 하느님과 결합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 하느님과 더 완전히 결합할수록 더 완전한 사랑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하느님을 잊게 하는 자기사랑은 자기를 파멸시키는 거짓된 사랑이다. 사람은 이기적인 사랑에 집착할수록 하느님으로부터 더 멀리 이탈하게 되고 하느님을 떠난 인간은 생명과 사랑을 잃고 죽음과 증오만을 얻게 된다. 사랑하는 존재로 창조된 인간에겐 사랑할 수 없는 고통보다 더 가혹한 고통은 없다.
사람의 영혼은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되어 나왔기에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하느님께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사람이 자기를 잊으면 잊는 만큼 영혼 안에 하느님께 대한 기억은 더 생생하게 살아 있게 된다. 사람이 자기를 완전히 잊고 하느님만을 기억하며 살 때 사람의 모든 생각은 하느님께 집념하고 온 마음은 하느님 사랑에만 집착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자기의 명예와 자기의 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느님을 만족시켜 드리겠다는 일념으로만 살게 된다.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그것은 사랑의 시대이다. 이 사랑의 새 시대는 오늘 복음에 소개되는 예수님의 첫 제자들처럼 자기를 잊고 자기를 하느님께 바치는 사람들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여기에 인간의 구원이 있고 자유와 해방이 있고 지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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