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여러 문화와 신앙에서 육신은 영혼과 반대된 자리에 존재하는 것으로 악의 성향을 띠고 있는 인간의 허울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육신은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는 것으로 그가 가진 성향은 지상성, 역사성, 사회성 등입니다. 이 육신은 완벽한 것이 아니기에 생성과 성장과 소멸을 거치는 유동적인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한동안 그리스도교에도 만연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에서 육신의 중요성을 발견하여 교도권 문헌에서 이 사실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부터이고 그 이후에 여러 차례에 걸쳐 문헌이 나온 바 있습니다(공의회 문헌 중의 사목헌장, 현 교황님의 회칙 인류의 구원자, 진리의 광채, 생명의 복음 등). 이런 문헌에서 인간의 육신이 가지는 존귀함은 여러 차례에 걸쳐 표현되고 있습니다.
육신의 존귀함의 근거로 드는 것은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사실과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셨다는 두 가지 사실에 집중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 생명의 복음에서는 인간은 육신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육신 자체이다 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참조, 81항).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하는 방식은 육신을 통해 구체화되 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은 계속 존재하지만 삶을 살아간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육신을 통해 경험하고,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대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화는 외적인 존재, 나와는 다른 존재와 하는 것으로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말한 것처럼 『사람이 외형을 통해 알지 않고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듯이 다른 사물과 관계를 지닐 수 있는 유 일한 통로인 것입니다. 또한 영적인 성숙을 위한 요소들도 육신을 통해 섭취와 육신의 지성과 이성의 능력으로 성숙됩니다.
더 나아가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에게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육체는 영혼과 통하고 그것이 바로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 이고 향연 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신 사이에 균형잡힌 고유한 통일성을 가지고 있으며, 에페소서의 말씀과 같이 인간의 존재는 하느님의 신비 안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완전성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께 창조되고 성자의 피로 구원되었고, 성령의 궁전 이 된 인간의 육신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이 되고, 인생의 의미를 실제로 느끼게 하는 통로인 것입니다. 이 차원에서 육신의 부활을 고백하는 신경의 의미를 영적으로 새겨 볼 필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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