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킬 것을 약속합니다』『복음의 길을 따라, 정결, 청빈, 순명을 하느님께 삼가 서약합니다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따르겠습니다』(출애 24, 3~7).
인생의 방향을 정향시키는 계약의 언어들이다. 서원식에 온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일생을 봉헌 하겠노라」 하느님께 약속드린 지 20년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 이렇다할 희생을 바쳐본 적이 없다.
수도회에서는 오랫동안 파푸아뉴기니 등 오지에서 활동할 선교사를 모집해왔고, 그밖 에도 큰 희생을 요구하는 소임들이 여럿 있었다.
희생을 싫어하는 나는 그런 일들에 한번도 자 원하지 않았었는데, 언제부턴가 마음 한구석에서 작지만 줄기차게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가 있었다. 한줄기 낙수도 오래가면 바위를 뚫는다던가. 여리지만 줄기찬 그 양심의 소리에 못 이겨 어느 날 나는 「장기기증서」에 서명하게 되었다.
후배 수녀님들이 의젓하게 장기를 기증하겠노라 서명하는 것을 보는 순간, 어떤 이유에서든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기증서를 받아들고 신상명세를 작성하려는 순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하면서 심장과 손이 함께 떨렸다.
차가운 금속성의 수술도구와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고, 나의 일부가 나를 떠나 어디론가 간다는 사실에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대체 이 소름의 이유는 무엇일까? 서원으로 바친 몸이라면 살아서도 이미 내 몸이 아니고 죽고 나면 더더욱 그럴 것이 아닌가.
상당 기간 이런 질문들이 뇌리를 맴돌고 나서 얻은 결론은 나 자신이 「서원」의 본질을 살게 하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다달이 피정에 참여했고 피정 때마다 죽음을 준비한다고는 했지만, 그건 알속 없는 껍데기일 뿐이었다. 이처럼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 았다는 성찰을 한 후, 나는 매일 장기기증서약을 마음에 되새기며 실제적으로 죽음을 준비 하게 되었다.
아직 장담하기엔 이르지만, 매일 매순간 하느님과의 맞대면이자 우리의 최종 목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사는 것은 진정 우리를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가운데 용감하고 적극적으로 살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기기증은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선사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진정한 의미의 서원, 즉 하느님과의 계약을 올바로 살도록 깨닫는 계기를 마련해준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이었다.
출애굽기 24장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계약체결 과정을 다룬 일종의 「예식서」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계약식은 「피의 계약」(3~8절)과 「계약의 식사」(9~11절)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짐승의 피로써 계약을 맺는 「피의 계약」에서는 온 백성이 산 아래서 제단(하느님을 상징)과 백성에게 피를 뿌린다. 반면 「계약의 식사」에서는 백성의 대표자들인 모세와 칠십 명의 장로들이 하늘과 맞닿은 산 위에 올라가서 하느님과 함께 즐거이 먹고 마신다.
언뜻 보아도 어색하게 연결된 「피의 계약」과 「계약의 식사」는 원래 서로 다른 전승을 갖고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모든 계약에는 의무가 따른다. 의무 계약은 허구이다. 계약에 따르는 의무를 위반할 때는 그에 따른 저주(불이익)가 있다.
제단과 백성 들에게 피를 뿌리는 「피의 계약」은 계약을 위반하는 자는 쪼개져 피 흘리는 짐승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피의 계약」은 이런 위협만이 아니라, 계약 당사자간의 결속을 의미하기도 한다.
피를 생명의 샘으로 본 이스라엘인들은 계약 당사 자들에게 피를 뿌림으로써 서로 피를 나누는 새로운 결속(혈맹)관계가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계약은 마침내 쌍방이 상대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선택할 때 완성된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는 길은 그분과의 만남이지만,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을 직접 뵙는 일을 두려워했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계약에는 당사자 의 허물에 대한 용서가 있어야 한다.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서로에 대한 관용과 용서가 전제 되지 않으면 계약이 성립되지도 않겠지만 성립되더라도 지속될 수 없다.
「계약의 식사」는 이처럼 위협과 공포의 장벽을 제거하고 상대방을 용서하는 은총의 공동 식사이며 화해의 잔치이다. 따라서 피의 계약으로 맺어진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계약은 이 잔치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계약의 식사」 장면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갈망하는 이들에겐 부러운 장면이다. 『그들은 거기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뵈었다. 그가 딛고 계시는 곳은 마치 사파이 어를 깔아놓은 것 같았는데 맑기가 하늘빛 같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뵈오며 먹고 마셨다』(10~11절). 모세가 희생제물인 짐승의 피로 하느님과의 계약을 맺었다면,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 삼아 당신 자신의 피로 계약을 맺으신다.
이 예수님의 새로운 계약(新約)은 모세의 계약(舊約)의 완성이시다. 우리 삶에서 이러저러한 약속이나 계약을 맺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고, 결혼식이나 수품 혹은 서원식에 참여하는 것도 그러하다.
하지만 한 번 한 약속을 평생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진정 가치 있는 일은, 그 약속들의 외형적인 지킴이 아니라 그 약속의 본질을 나날의 삶에서 실현해감이다. 회에서 마련해준 거창한 서원식은 오래 전에 치뤘지만, 매일매일 진정한 의미의 서원의 본질을 살아가지 못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나는 오늘도 그 약속의 의미를 생각하며 하루를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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