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흠숭을 능가하는 성인 공경의 폐단을 실례를 들어서 참고로 하자. 필자가 유학생 시절에 어떤 대도시에서 목격한 것이다.
그날은 대축일이라서 그 도시의 주교좌 성당에 가보았다. 훌륭한 대성당 안에 300여명 정도의 신자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미사 시간이 되어 대주교님이 중앙 제단에서 미사를 거행하는데 제단 주변에 모여서 미사참례하는 사람은 100명도 되지 않았다.
200여명의 다른 사람들은 대성당 좌우 벽면에 설치 되어 있는 작은 제단과 여러 성인상에 삼삼오오 모여서 여러 개의 초를 꽂아 놓고 무엇인가를 빌고나서, 다음 칸에로 옮겨가서 다른 성인상 앞에서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20여개 성상을 순회하고 있으니 성당 안이 장터를 방불케 하였으며, 중앙제단에서 거양성체를 하든지 영성체를 하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 무질서는 계속되었다.
주례 주교님의 강론도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런 광경을 목도한 필자는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전례 개혁에 대하여 역점을 두고 강조한 것은 참으로 지당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귀국하여 수많은 성당에 가보았지만, 다행하게도 위에 말한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미사가 거행되는 중에 고해성사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것은 폐단이니 시정되어야 한다.
바쁜 신자들의 편의를 보아준다는 핑계는 정당한 핑계가 아니다. 미사가 거행되는 같은 장소와 같은 시간에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것은 전례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니, 적어도 장소만이라도 다른 곳에 옮기는 것이 좋겠다.
또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필자가 신학교에 봉직할 때이다. 성모성월 끝무렵에 성모의 밤 행사를 하려는데, 그날 비가 많이 와서 부득이 성당에서 행사를 치르게 되었다.
그래서 성체를 모신 성당 안이기 때문에 간소하게 장식을 하고 기도행사를 진행하였더니, 여름방학 동안에 들려오는 소문이 우리 학장 신부님은 성모께 대한 열심이 없어서 성모의 밤 기도를 소홀히 하더라는 것이었다.
씁쓸하게 웃고 말았지만, 신학생들마저 인습에 사로잡혀 전례정신과 성인공경에 대한 미숙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였으니, 결국 학장이 「내 탓이로소이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인공경을 교회가 공인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느님 흠숭에 종속되는 것이고 하느님 흠숭에로 지향해야 되는 것이므로, 마음 자세 뿐 아니라 겉모양까지도 하느님 흠숭을 능가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태도이다.
영세 때에 어떤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주는 것은 모든 성인의 통공교리 안에서 수세자가 그 성인을 모범하거나 그 성인의 전구를 염원하는 뜻으로 주는 것이므로, 세례명을 따로 주지 않아도 합법적으로 합전례적으로 거행한 세례는 유효하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각자의 국법상의 이름이 본명(本名)이기 때문에 세례명을 본명이라 하지 말고, 세례명이라 하는 것이 타당하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