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5~6장은 여러 가지 다양한 규정으로 형성되어있다. 앞의 1~4장에 나온 주제 「병적조사」와 5~6장 이후에 나오는 「광야」주제와는 관련이 없게 보인다.
5장에서는 부정한 사람을 진지에서 내쫓아 버리는 법과 남에게 손해를 입혀 야훼를 배신하는 자는 그 죄벌을 면할 길이 없음을 알려주고 5장 1절부터는 아내가 간통한 것을 밝히는 절차를 자세히 말하고 있다.
6장은 대부분 「나지르인」에 대한 규정과 그들의 삶의 자세를 언급하고 있고, 마지막 부분은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사제의 축복의 기도」를 소개하고 있다.
「나지르」는 히브리어로 「주님께 봉헌된 것」「성별된 것」「속인과 구별되는 것」등의 뜻을 지닌다. 오경에서 오직 여기에만「나지르의 규정」이 기록되고 있다.「나지르」라는 단어만 들어도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체험이 있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 정통파 유다인들로부터 멸시(?) 당한 일이다. 이유는 내가 검은 수도복을 입고 무엇보담 십자가를 가슴에 달고 다닌 것이 그들의 비위를 거슬리게 한 것일까?
내가 머물렀던 기숙사는 유다인 지역이라 기숙사 앞뒤로 그들의 회당 (시나곡)이 있어서 대문 밖을 나가면 눈에 띄는 것이 유다인들이다.
특히 귀밑에 긴 구레나룻수염을 기르고 일년 내내 아니 일생동안 언제나 검은 양복과 검은 모자를 쓰고 다니는 정통파 유다인들은 십자가를 걸친 수녀가 지나가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다.
하루는 귀여운 유다인 아이들이 몇 명 지나가기에 '샬롬!' (평화!) 하고 인사를 했더니 놀랍게도 대뜸 '로 샬롬! (Lo Shalom!)' (평화 아니야!) 라고 쏘아붙이고 나서 큰 부정이나 탄 것처럼 얼른 나를 피해갔다.
이방인이 건네는 인사까지도 싫은 모양이다. 심지어는 빵을 사러 가면 빵을 팔지 않는 집도 있다. 그것은 내가 믿는 나자렛의 예수 그리스도는 신명기 21장 23절의 의미대로 『나무에 매달려 하느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다.
2000년전에 사도 바울로가 고린토 교회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뒤늦게 깨닫고 이스라엘에 있는 동안은 아예 십자가를 집에 두고 가슴에 달지 않고 다녔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유다인이나 그리스도인이나 할 것 없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곧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1고린토 1, 23~24).
그런데 한가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수녀」라는 명칭이 히브리어로 「느지라」라고 하는데 「나지르」와 똑같은 어근이다. 이는 『하느님께 봉헌된 자』라는 것을 말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나지르인」이네. 수녀를 싫어하면서도 수녀에 대하여 이렇게 불러주는 것을 보면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나지르」에 대하여는 아모스 2, 11절 이하와 마카베오 상 3, 49절 이하에도 나온다. 최초의「나지르인」은 삼손이다 (판관기 13~16장). 사무엘도 나지르였다 (사무엘상 1, 11~28).
6장 22절~27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종교사상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는「아론사제의 축복의 기도」가 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말로 복을 빌어 주라고 하여라』. 야훼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며 너희를 지켜 주시고, 야훼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주시고, 야훼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면 내가 이 백성에게 복을 내리리라』. 레위기 9, 22절에서는 『아론은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고 복을 빌어주었다』라고 나온다.
온갖 위험에서 안전하게 지켜지심과 물질적 번영, 정신적 안정과 평화 이 모두는 하느님의 큰 은혜이다.『웃으시며』이는 호의를 나타내고 미소와 친절로 대접한다는 뜻이리라.『귀엽게 보아주시고,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여기서『보아주신다』는 것은 얼굴을 감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느님과 어우러져 완전한 우정을 나타내는 그 평화를 말한다.
매년 새해 첫날에 듣게되는 이 민수기 6장의 축복의 기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도 중의 하나이다. 수도자로서 할 수 있는 것, 베풀 수 있는 것에서 비록 물질적인 것은 가진 것 없지만 이 기도만은 언제나 누구를 위해 드릴 수 있는 마음 넉넉히 늘 준비되어 있다.
사실 오래 전부터 이 기도를 매일 나의 기도로 삼고 기도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드리고 있다. 오늘은 특별히 나의 이 부족한 글을 읽으시는 모든 애독자들을 위하여 구원의 상징인 십자표시를 49번 그으며 이 기도를 정성껏 바쳐드린다.
『야훼께서 당신에게 복을 내리시며 당신을 지켜주시고, 야훼께서 웃으시며 당신을 귀엽게 보아주시고, 야훼께서 당신을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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