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공경과 연관된 용어의 오류를 고쳐야 하겠다. 우리는 흔히 『성인품에 올린다』『복자품에 올린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신품성사의 세단계인 부제품, 사제품, 주교품 외에 다른 품은 없다. 복자품이니 성인품 등은 설정된 일이 전혀 없다.
주님께서 교회를 사목하는 권한과 책임을 사도들에게 주셨고, 사도들은 그 후계자들에게 이러한 권한과 책임을 전수하였으니, 오늘의 성직자들도 신품성사로써 신자들을 사목하는 권한과 책임을 동반하는 은총과 은사를 받고 있다.
따라서 신품성사를 받는 사람은 해당 직위에 상응하는 품계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약간 생소하지만 어떤 사제가 주교품에 올랐다는 말은 어법에 맞는 표현이다.
그러나 누가 성인품에 올랐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존재하지 않는 복자품이나 성인품에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것이고, 둘째로 이미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신 분을 현세의 교회가 어떻게 올리고 내리고 할 수 있겠는가?
교회가 어떤 분을 복자 또는 성인이라고 선포하는 절차를 시복식, 시성식이라 하는데 이는 현세인들에게 그 성인을 공경할 수 있게 허락하고 그런 성인을 모범하라고 권장하는 사목직 수행일 뿐이고, 이미 현세인이 아닌 성인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는 예식이다.
굳이 무슨 영향을 찾는다면 그 성인의 외적 영광이 현양된다는 것인데, 외적 영광은 그 성인이 하느님 안에서 누리고 있는 내적 영광(영원한 행복)에 아무것도 가감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엄밀하게 말하자면 시복식이나 시성식은 복자나 성인을 위한 예식이 아니고 살아있는 신자들을 위한 사목행사이다.
그래서 시성식은 죽은 신자를 위한 위령미사 봉헌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예식이다. 위령미사는 연령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전례이지만, 시성식은 성인을 돕는 행사가 아니고, 현세 신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예식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누구를 성인품에 올린다는 말은 교리에나 어법(語法)에 맞지 않는 말이기 때문에, "누구를 시성한다, 누구를 성인으로 선포한다, 누구를 성인반열(班列)에 올린다" 로 표현해야한다. 이 마지막 의미로 일본말로는 시성식을 열성식(列聖式)이라 한다.
교회의 시성식으로 어떤 이가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어떤 이가 성인이라고 인정되기 때문에 교회가 이것을 신자들에게 공포하는 절차가 시성식인 것이다.
시성식이라는 절차가 마련되기 이전에 신자들의 추앙을 받던 고대 성인들과 시성식으로 선포된 성인들을 교회법적 성인이라 하여 공식적 공경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시성식과는 관계없이 하느님의 은총에 충실하여 하느님의 영광에 영원히 참여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신학적으로 성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남용과 혼란을 염려하여 이런 신학적 성인을 공식적으로 공경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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