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민수기 7장에서는 지금부터 3500여년전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광야에 있을 때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여 만든 성전의 첫 모형인 「성막」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마침내 모세는 성막을 세웠다』(7, 1). 이는 출애굽기 40, 33절과 연결되는 부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울을 세워 성막과 제단을 둘러싸게 하고, 울 정문을 가리는 막을 드리웠다. 이렇게 모세는 모든 일을 다 마쳤다』.
성막의 의미는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참으로 중요하다. 신구약 50여장에 걸쳐 성막에 대하여 나와있다. 성막은 교회의 예표이다. 성막은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이다. 하느님께서 죄인을 만나주신 장소이다.
구약의 「성막」의 의미를 모르면 히브리서간 10, 19~20절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율법보다 성막을 더 잘 알 필요가 있고 성막에 대한 필요성은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에 나타난 모든 모형틀 중에서 최대의 것이라고 까지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성막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곳이고 하느님 자신과 인간사이에 통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만드신 것이다.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성막과 제단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12지파 족장들의 예물봉헌을 아주 길게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봉헌된 예물에 대하여는 열두 번씩이나 기록하고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에 거처하시는 야훼 하느님을 중심으로 그들의 고된 광야의 삶을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하여 하느님 외에 다른 어떤 신(神)이 없음을 알게된다. 오직 야훼하느님만이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그들의 구원이 된다는 것을 체험하게된다.
구약에서 성막을 세운 목적은 하느님과 대화하기 위한 것임을 알았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시고 백성은 그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관계를 가진다. 원래 종교란 의미도 바로 이러한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무엇 보다 대화로써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여기서 구약의 이스라엘 종교는 「말씀의 종교」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겠다.
우리들의 기도생활도 바로 이러한 하느님과의 대화의 관계를 말한다. 오늘 나를 위한 성막은 무엇이며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불란서 아르스의 성 요한 비안네는 감실이 당신의 「연구소」라고 하였다.
비안네 성인에게 있어서 성막은 분명히 감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참다운 성막입니다』(히브리 8, 2)
민수기 9장에서는 시나이 광야에서 첫 과월절을 지내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야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여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굳히는 데 있었다.
과월절을 지키는 규정은 외국인이나 본토인이나 모두 같았다. 9장 중반에서 언급되고 있는「성막위의 구름」은 하느님의 현존의 상징이다. 야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어 그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여주신다는 표징이다.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그들은 진을 치기도 하고 길을 떠나기도 하였다. 이는 하느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그분께 모든 것 내 맡기는 이스라엘인들의 신앙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야훼 하느님께서 친히 그들의 길이 되어 주셨던 것이다. 우리의 시선도 늘 위로 향하여 하느님 현존하심의 표징을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집트와 이스라엘 광야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그곳에는 길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 길을 따라가지 않고 멋대로 길이 없는 광야 속으로 들어간다면 대단히 위험할 것이다. 광야에서의 길의 의미는 생사(生死)가 달려있다.
신약에 와서 그리스도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입니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요한14, 6).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길을 믿는 자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스도인들의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길이시다.
민수기 10장 초반에는「비상나팔」을 만들어 부는 전례가 나온다. 진을 움직일 때, 적과 싸우러 나갈 때, 축제 때와 매달 초하루 행사를 즐기는 날, 번제와 친교제를 드리며 나팔을 불어라고 하신다. 이리하여 야훼 하느님께서 그들을 기억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리고 나서 『시나이 광야를 떠나 진지를 옮겨가며 행진하였는데 구름이 머문 곳은 바란 광야였다』(10, 11~12). 이제부터는 각 지파가 교대로 한사람의 사령관을 두고 야훼의 계약궤를 앞세워 길을 가며 진을 치기도 하고 다시 떠나기도 하였다.
「비상나팔」은 비단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옛사람들의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신호 표시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우 민방위 훈련할 때 사용하는 싸이렌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오늘날 안식일을 시작하는 시간과 마치는 시간을 알리는 신호로 싸이렌을 울리고있다. 비상나팔이건 싸이렌이건 둘다 그 소리는 무엇인가 임박하다는 것, 마음과 정신을 깨어있게한다.
민수기에서는 시나이에 안주하지 말고 약속된 땅 가나안으로 떠나라는 신호였다. 오늘 나에게 주는 비상나팔의 의미는 무엇일까?
『임의 전 생애가 마냥 슬펐기에 임쓰신 가시관을 나도 쓰고 살으리라. 이 뒷날 임이 보시고 날 닮았다 하소서. 이 세상 다 할 때까지 당신만 따르리라』는 하한주 신부님의 시(詩)처럼 살겠다고 서원한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경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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