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가 신앙과 관련되는 모든 상황에서 하느님을 대리한다고 생각하는 풍토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한다. 성직자들이 신품성사를 받아서 사목자가 되었으므로 신자들과 특별한 인연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신자들이 그들의 서품을 기념하는 은경축(25주년)이나 금경축(50주년)을 기리는 행사를 갖는 것은 교회의 오래된 관습이다.
그렇지만 이런 기념행사도 경건하고 절도있게 하지 않으면 과공(過恭)은 불경(不敬)이라는 옛말에 해당될 수도 있다. 서품기념 미사에 열심히 참례하여 해당 성직자의 영성적 발전을 위하여 기도하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이 지당하지만, 미사후에 축하식이나 축하연이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소란스럽거나 지루하게 진행되는 것은 민망스러운 일이다.
특히 이런 행사를 위한 경비염출에서 마음은 간절하지만 능력이 부족한 가난한 신자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은 애덕의 의무이다. 그리고 과도한 예물이나 허례허식적인 행사는 해당 성직자를 곤혹스럽게 하거나 청빈과 겸손의 덕행수련을 방해할 수도 있다.
한국 교회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성직자의 회갑이나 칠순 행사를 교회 공동체가 공금을 사용하면서까지 성대하게 치르는 것은 대단히 이상하다. 그런 행사는 당연히 해당 성직자의 출신 가정이나 친척들이 할 일이고, 사정이 허락되면 신자들의 대표로 몇 사람이 부조를 가지고 참석하거나 약간의 예물을 진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여간 서품기념 행사와 성직자의 수연행사는 교회로서는 동일선상(同一線上)에서 고려할 수 없는 것이다.
성직자들의 노후생활이나 장례식은 해당 교구나 수도회가 법적으로 책임지고 있다. 그러니 신자 개개인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는 신자들은 해당 교구나 수도회를 이런 목적으로 돕는 것이 좋다. 그리고 투병중이거나 은퇴한 성직자를 사적으로 방문하여 위로하거나 돕는 것은 좋은 애덕행위이다.
일반적으로 성직자가 영혼 육신이 건강하게 맡은 성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희생을 바치는 것을 넓은 의미로 신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표지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성인의 통공 교리를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요사이 통용되는 교리서에서 별로 언급되지 않는 것을 말해야 되겠다. 자녀에게 성직자나 수도자가 되기를 강제적으로 요구하거나 반대로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신자는 하느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중대한 잘못을 범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성직자나 수도자가 되는 것은 첫째로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하고, 둘째로 교회의 선택으로 되는 것이므로, 비록 부모라도 하느님의 성소와 교회의 선택권에 도전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부모가 찬성이나 반대의견을 밝힐 수는 있지만, 끝까지 강권하거나 방해하는 것은 정당한 신앙행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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