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성령을 주신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께서 성령을 주시며 하시는 동작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숨을 내쉬시며 말씀하셨다』는 말에서 「숨을 내쉬다」라는 표현은 창세기 2, 7에 나오는 다음 말씀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새번역). 야훼 하느님께서 당신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기 전에 아담은 진흙 덩어리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스승 예수님의 죽음 후에 제자들의 공동체는 생명력이 없는 「죽은 공동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오늘 복음말씀의 시작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문을 닫아 걸고 있었을 만큼, 두려움에 얼어붙어 있었다. 자기들 속에 폐쇄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스승 예수께서 그들 한 가운데로 다가오시어 당신의 평화를 주시고 당신의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어주시자, 그들은 용기를 내어 파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요한 복음에 의한 「제자들의 성령 받음」대목의 이런 역할은 성령강림 대축일인 오늘의 전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의 대목에서 더 강조되어 나타난다. 루가 복음서-사도행전을 보아도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확고부동하게 믿게되고, 두려움 없이 적대적인 유다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에 관해 증언할 수 있게 된 것은 성령을 받게되면서부터이다. 예수님의 죽음 이후 죽어있던 것이나 다름없던 제자 공동체가 스승 예수님이 보내시는 성령을 받은 후에 생명력이 넘치는 공동체로 살아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도행전 전체의 구조에서 볼 때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출발점에 해당되는 사건인데, 사도들은 성령을 받음으로써 앞으로 있을 증인으로서의 긴 여정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힘을 받게된 셈이다. 성령은 초대 교회의 탄생에서 뿐만 아니라, 그 성장 및 생활 안에서도 원동력의 역할을 하였다.
성령이 우리의 교회생활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관련하여 아테나고라스 총대주교는 다음과 같이 의미깊은 말을 하였다: 『성령이 없으면, 하느님은 멀리 계시고, 그리스도는 과거에 머물며, 복음은 죽은 문자에 불과하고, 교회는 하나의 조직체에 불과하며, 귄위는 권력이고, 선교는 선전이며, 예식은 의고(고풍)주의이고, 윤리적 행위는 노예적 행동이다』 참으로 날카로우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이기에, 한 문장 한 문장 그 뜻을 나 나름대로 새겨본다. 『성령이 없으면 하느님은 멀리 계시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삶이 아닐 때, 하느님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는 관련이 없는 분이 되어 버린다. 말만 신앙인이지, 자기 욕심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는 과거에 머물며』: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체적 신앙과는 상관이 없고, 과거 역사 속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한 인물에 불과하게 된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에 이런 정도의 의미밖에 차지하지 못할 때, 자연스럽게 『복음은 죽은 문자에 불과하게 된다』. 『성령이 없으면 교회는 하나의 조직체에 불과하며』: 성령의 차원이 없다면 교회는 복음증거의 삶을 사는 공동체가 아니라, 학교, 병원, 사회사업단체 등 수많은 단체들을 운영하는 거대한 조직체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한 곳에서 「권위」라는 것은, 능률을 올린다는 명목하에, 남을 누르기 위한 「권력」으로 변질된다. 『성령이 없으면 선교는 선전이며』: 성령의 차원을 잃어버리면, 교회의 선교는 주님을 믿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기쁨이 되는지를 전하는 「복음전파」가 아니라, 어떤 회사의 광고 선전처럼 되거나, 자기 단체의 세를 불리기 위한 방편으로 변한다.
성령을 떠나 사는 삶은 예수께서 몸소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진리와 사랑」을 떠나 사는 삶이다(참조: 「진리의 성령」에 관한 요한 16, 13). 『예수님의 진리와 사랑』을 떠나게 될 때, 교회가 생명력을 잃고, 매력을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교회의 창립일이요 생일」이라고도 볼 수 있는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는 「성령」의 임하심을 정성스럽게 기도로 청해야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나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 예수께서 몸소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그런 「사랑과 진리」를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겠다. 특히 오늘 복음의 시작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처럼, 무섭게 변모하는 세상의 흐름 앞에 겁을 먹고 자기 속에 움츠려 들고 있는 공동체의 경우, 또는 공동체의 창립 초기의 유연성과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거대해진 조직 속에 현실유지에 급급하며 경직되어 가는 공동체의 경우에는 더욱 더 그렇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생기」를 빼앗아 가는 주범은 바로 「죄」이다. 생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이 「죄」를 극복해야한다. 오늘 복음에서는 바로 그 길을 알려준다. 고해성사야말로 우리의 영적 생활에 생명을 주는 『주님의 생명의 숨결[영]』을 다시 받는 은총의 길이다. 「성령」은 우리를 죄의 지배하에 있는 노예생활로부터 해방시키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이 주시는 생명의 숨결을 느끼며 살아가도록 이끌어 준다.
『주님, 보내시는 당신 얼에 누리의 모습은 새롭게 되나이다』(오늘 화답송 시편 중에서)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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