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의 신비는 구원의 역사에서 점진적으로 계시되었습니다. 즉, 구약성서에서 어디에서도 이 신비에 대해 결정적으로 언급을 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신약성서에 이르러서야 초대 교회가 오랜 묵상을 거쳐 깨달은 계시진리입니다. 교회는 이 신비가 하느님 세 위가 갖고 계신 내적인 신비로서 알아듣고 있으며, 이 신비는 단순히 내적인 신비가 아니라 외적으로도 표현되는 신비임을 선교라는 측면에서 알아듣고 있습니다. 즉, 성부께서는 성자를 세상에 파견하셨고, 성부와 성자에 의해 성령께서 제자들 위에 임하셨으며, 성령 강림으로 태동된 교회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의해서 파견되었고,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여러 교부들은 하느님과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하느님께서 선교의 최종인(最終因)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 의해서 선교하도록 파견된 것이 아니라, 파견하시는 가장 먼저의 능력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교회의 선교 사명에 관한 교령 2항에서 공의회의 교부들은, 이처럼 교회를 파견하시는 하느님의 정체를 사랑이라고 정의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거룩하신 성부께서는 사랑 자체이시고, 모든 사랑의 근원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속성상 자기 자신에 갇혀있지 않고, 그 사랑을 같이 나눌 다른 존재를 찾게 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지고한 사랑을 가지신 성부께서 성자를 세상에 파견하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며, 성령께서 오신 것도 이 때문이며, 교회가 파견된 이유도 바로 이 사랑 때문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서 교회가 선교 사명으로 받은 것은 사랑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교회는 삼위일체와 자신과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단순히 어떤 직무를 수행하도록(예를 들어 성사 집전) 파견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먼저 실천하고, 교회 밖의 모든 이들에게 전하도록 보내졌다는 사실을 천명하고 있습니다(선교교령 3). 그렇게 본다면, 어떤 외적으로 표현된 형태의 선교는 내적인 사랑의 힘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교회 공동체 모두가 인식하는 것이 오늘 주일의 의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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