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은 그들의 신앙생활을 영위할 때에 지나치게 성직자에게 의존하고 있다. 물론 성사생활에 있어서는 칠성사의 집전자인 성직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성사와 직접 관련되지 않는 신앙생활의 다른 분야에서도 지나치게 성직자에게 의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성직자 만능주의가 생겨났다. 이러한 성직자 만능주의(clericalism)는 교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성직자의 독재적 결정권을 인정함으로써 사목의 비능률과 평신도의 비협조를 초래한다. 성사생활이 신앙생활의 전부가 아니라면, 비성사적 교회생활의 여러가지 분야에서 평신도들의 유권적 참여는 당연한 것이다.
공의회의 교회헌장이 말하는 대로 평신도들은 교회의 영적 보화를, 특히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의 도움을 사목자들에게서 풍부히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하느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 안의 형제로서의 자유와 신뢰를 가지고 이 모든 필요와 소망을 사목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다(교회헌장 4장 37항).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사생활은 성사거행권을 가진 성직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모든 신자들도 필요에 따라서 성사를 합법적으로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직자는 합법적으로 신청한 성사를 집행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당하게 신청된 성사집전을 더 큰 정당한 이유 없이 거절한다면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 평신도들은 자신이 향유하는 지식과 능력과 자격에 따라 교회의 이익을 위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의 의견을 밝힐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그럴 의무도 있다(37항).
어떤 사물에 대하여 동일인에게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인정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성인(成人)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평신도도 교회 안에서 언제까지나 미성년자로 머물 수는 없다.
그래서 성직자들은 기꺼이 평신도들의 의견을 참작하고, 그들을 믿고, 교회에 봉사할 일들을 그들에게 맡기며, 행동의 자유와 여유를 그들에게 남겨 줄 뿐 아니라 오히려 자발적으로 일을 착수할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해야 한다(37항).
교회헌장과 평신도 사도직 교령과 기타 공의회 문헌에서 표명된 정신은 한마디로 교회가 평신도들을 교회의 2급 내지 3급 신자로 보지 않고, 성직자와 수도자와 더불어 그리스도 신비체의 동급 구성원이라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활동에 있어서는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의 소임과 직분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정당한 질서를 존중하면서 함께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건설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교회와 관련된 모든 일에 있어서 평신도는 성직자에게 무조건 순명해야 된다는 생각은 어리석고 틀린 생각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성직자는 사목직이 봉사직이라는 교리를 모르는 사람이고, 이렇게 생각하는 평신도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와 의무를 모르는 영구한 미성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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