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하여 오늘 교회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관하여 네 복음서 중에서 가장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마태오 복음서의 제일 끝자리에 나오는 말씀을 듣는다. 먼저 복음 말씀 자체를 묵상하고, 이어서 삼위일체 대축일인 오늘 축제의 의미에 관하여 묵상하겠다.
오늘 주일 복음의 내용은 매우 집약적이다. 특히 열한 제자는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갈릴래아에 있는 산으로 갔다라는 오늘 복음의 첫 문장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복음서의 앞 부분에 이미 나왔던 내용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면 관계상 몇 가지만 집중하여 살펴보겠다.
「갈릴래아에 있는」: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마태 28, 10 참조: 26, 32의 예고), 「갈릴래아」라는 장소는 제자들에게 큰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던 곳이었다. 왜냐하면 갈릴래아는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처음으로 소명을 받은 곳」이었고, 「제자로 양성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후 당신의 제자들을 새 출발시키시려는 예수께서는 이제 그들을 그들의 「첫 사랑」이 있었던 갈릴래아로 불러내신 것이다(참조: 호세 2, 16).
「산으로 갔다」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산」도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큰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성서를 보면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뵙고 그 분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제자들은 「산」에서 「산상설교」라는 새롭게 해석된 「계명」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았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갈릴래아의 그 산」으로 다시 부르신 것은 매우 의미 깊다. 그것은 당신의 제자들을 「모든 민족들에게 파견」하시기에 앞서 그들에게 당신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상기시켜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갖고 계신 분, 즉 죽음까지도 그분의 권한 아래에 두고 계신 「주님」으로서의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민에게」 파견하신다. 그런데 이 때 그분이 주시는 제자들의 사명의 핵심은 『만민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는 것』이다. 언뜻 보면 매우 의아하게 생각될 수 있는 부분이다. 「제자로 삼다」, 「제자가 되게 하다」가 핵심사명이라니 도대체 무슨 뜻인가? 이 점은 지상 생애 동안 예수께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제자들의 공동체를 형성」하려고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면 좀 더 이해가 될 수 있다. 무릇 제자란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의 사명은 복음선포를 듣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제자가 되도록 하는 데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열 한 제자는 「예수님의 제자로」만 남아 있었는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까지 체험한 이제 그들은 만민에게 파견되어,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에 하셨던 말씀대로 「사람 낚는 어부들이 되게」(마태 4, 19) 된 것이다.
『나는 세상 종말까지 어느 날이나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의하여 새롭게 탄생되어, 계속 자라날 예수님의 제자공동체 곧, 교회에게 주어진 가장 든든한 보증의 말씀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 13~16)의 역할을 하려면, 갖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만, 그 공동체는 당신 자신이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뜻하는 「임마누엘」이셨던 분이신 주님께서 『그들과 늘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을 받은 공동체이다.
이제는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의 주제와 직접 관련되는 말씀에 대하여 묵상할 차례가 되었다.
사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관한 신앙 교리는 궁극적으로 인간적 이해의 능력을 초월한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었던 예수님의 사건을 통해 「계시」된 것으로서, 인간 인식의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할 줄 아는 사람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역사상 초기의 몇 세기 동안 교회는 「세상의 지혜」에 비추어 쉽게 이해하려는 경향에 맞서, 이 신앙교리를 지키기 위해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야 했다.
오늘 복음말씀에 의하면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을 포괄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의 사랑의 친교」안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사람들은 성자 예수님과 결합되고, 성령을 받는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성자 예수님과 가장 깊은 사랑으로 「일체」가 되어 계신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데, 이 때 성령은 이런 친교를 근본적으로 가능하게 해 준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성부와 성자 성령의 삼위로 되어 계시다는 가르침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가르침을, 예수님의 삶 전체를 통하여 증언된 것처럼, 『하느님은 사랑이시다』(참조: 1요한 4, 8?6)라는 점과 연결시켜 묵상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사랑은 역동적이다. 사랑은 가만히 정체되어 있지 않는다. 하느님은 사랑으로 그토록 충만하셔서, 피조물인 인간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하여」그 삼위일체적 사랑의 친교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부르시기까지 하신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생이 삼위일체이시며 사랑이신 이 하느님 안에 든든한 기초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늘 경탄하며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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