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성체성혈 대축일은 우리 한국 신자들에게는 특별히 뜻 깊은 날이다. 바로 이 날이 동시에 골육상쟁의 비극이었던 6.25전쟁 발발 50주년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죄악의 극대화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면,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성체성사」는 바로 전쟁과 정 반대의 것을 표현한다. 성체성사는 바로 「사랑 때문에 당신 생명을 내어 주신」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사랑의 성사」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현재 가진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고 싶어하며, 그것도 부족하여 나중에는 아예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계속 더 가지고 싶어한다. 이러한 욕심은 개인에게만 있지 않고 가족, 사회, 국가에도 있다. 탐욕이 국가적 차원에서 빚어내는 결과가 바로 전쟁이라고 생각된다. 수많은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고, 이웃과 이웃을 원수로 만들었으며, 수백만에게 반세기가 넘도록 생이별을 강요하는 체제를 낳은 그 참혹한 6.25 전쟁을 기념하는 오늘, 한국의 우리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며, 다시 한번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당신 자신까지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 몸으로 되새기고,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로 다짐한다.
그러면 오늘 복음 말씀을 좀 더 가까이 살펴 묵상하자. 오늘 복음에는 초대교회의 생활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던 성체성사(만찬례)에 관한 전승이 실려있다. 신약성서에는 신약성서가 문헌으로 쓰여지기 이미 오래 전부터 예수님의 분부에 따라 성체성사가 거행되었음을 증언해주는 구절들이 있다(예컨대, 1고린 11, 23~25). 그런데 오늘 주일복음으로 우리가 들은, 마르코 복음사가가 전해주는 「최후만찬 전승」에서 의미 심장한 것은 빵을 떼시며 하시는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다: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여기서 말하는 「내 몸」은 예수님의 「육신」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분의 인격 전체를 뜻한다. 예수께서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라고 말씀하시는, 이 특별한 「빵과 포도주」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조금 뒤에 나오는 다음 말씀에 나온다: 『이것은 나의 피다. 계약의 피로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이 말씀은 한편으로는 그분의 죽음이 임박하였음을 가리켜 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함축하고 있다. 「많은 이들을 위하여」라는 말은 히브리어나 아람어의 한 표현 방법으로, 실질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를 뜻한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표현은 「계약의 피」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출애급기 24, 4~8에 나오는 「시나이 계약 체결」의 장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출애급기의 이 대목에 의하면 모세가 제물로 바쳐진 수송아지의 피의 절반은 하느님을 상징하는 제단에 뿌리고, 절반은 백성들에게 뿌리면서 『이는 야훼께서 너희와 맺으시는 계약의 피다』라고 말한다. 희생제물의 피를 통해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계약이 맺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 복음서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이 피흘리시며 돌아가심으로써 새롭고도 결정적인 방법으로 계약을 맺으셨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주시는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심」으로써 이 새로운 계약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끝 구절에서 예수님은 최후만찬, 곧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미래의 「하느님 나라」에로 시선을 돌리시며 말씀하신다: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 날까지 나는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 이 말씀에는 수난을 앞두고 헤어짐의 고통과 하느님 나라 안에서의 완성이라는 희망이 동시에 표현되어 있다. 아시다시피,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설교 말씀의 핵심 내용이었고, 가끔 종말론적인 잔치의 형태로 묘사되곤 하였는데, 예수님은 이제 그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한 다음에서야 비로소 그 포도주 잔을 마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런 말씀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과 그 수난과 죽음으로 당신의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된다는 것을 알고 계시다는 것을 반영해 준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는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이 명심하여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 자신까지 내어주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거기에 감사하는 태도이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의 삶을 본받아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을 내어 줄 각오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당신 자신까지 온통 내어 주신 주님의 「사랑의 성사」를 거행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조금도 열지 않으려 하고, 증오와 불신 또는 이기주의로 가득 차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을 모독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이다(참조: 1고린 11, 21~22).
마침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모처럼 우리 한민족 전체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이다. 대희년을 맞이하여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새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고 생각된다. 이 은혜를 결코 헛되이 하지 말아야겠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런 기회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그분께서 우리 민족을 평화의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계속 기도 드리며, 각자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민족 화해의 길에 앞장서 나아가야겠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