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밀라노에 있는 가장 오래된 성당 중의 하나인 성 암브로시오 성당(4세기) 내부 양편에는 3m정도 높이 대리석 기둥이 각각 한 개씩 서 있다. 한 기둥 위에는 십자 모형이 있고, 다른 기둥 위에는 구리뱀 모형이 세워져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게 물렸을 때 구리뱀을 달아놓은 것을 쳐다보면 죽지 않았듯이 신약에 와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구원된다는 신앙의 표시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구약은 신약의 예표이고 신약은 구약의 완성이라는 것을 여기서 깊게 느끼게 한다.
민수기 20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가는데 다소 쉽게 가로 질러갈 수 있는 길을 좀 비켜달라고 에돔 사람들에게 애원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만 그들이 길을 내어 주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은 에돔땅을 돌아가야만 되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로 이 고된 긴 여행을 하면서 또 다시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을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된다(민수기 21, 2~5 ). 무슨 오뚝이 기질을 가진 백성인지 불평을 하다가 무서운 벌을 받고도 또 다시 시작한다. 이러한 기질은 비단 이스라엘 백성 뿐이겠는가?! 오늘 나 자신에게도 같은 기질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고해성사를 볼 때마다 같은 생각을 하지만 또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고. 그러나 나의 잘못을 아는 것만으로도 은총이라고 했던가?
불교에서는 가장 큰 죄가 무지(無知)라고 한다. 모르는 것이 죄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인들의 죄는 죄에 대한 느낌이 없는 것, 죄를 죄로 모르는 죄가 아닐까? 그러나 과거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기억한다는 것은 바로 그 자체가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고, 과거의 지은 죄만 생각하면 아직도 죄중에 있다고 하신 어느 신부님의 말씀은 새겨들어야 하겠다. 하느님의 용서를, 그분의 자비하심을 모르는 것, 인정하지 않은 것, 이것이 곧 죄가 된다는 것이리라.
므리바에서 불평했을 때는 모세가 화를 냈다. 하느님께서는 화내지 않으셨다. 그러나 이제는 불평이 얼마나 심했기에 하느님께서 가만 두시지 않으신다. 불 뱀을 보내어 많은 사람들을 물어죽게 하신다. 그들은 이제야 하느님과 모세에게 대든 것이 큰 잘못이라는 것을 뉘우치고 뱀이 물러가도록 모세로 하여금 하느님께 기도해주시길 간청한다. 마음씨 좋은 모세는 이들의 간청대로 야훼께 기도 드린다.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신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청을 들어주신다. 불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놓고 쳐다보는 사람은 살게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모세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놓았다. 뱀에게 물렸어도 그 구리 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죽지 않았다』(21, 9).
예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 위에 달리실 것을 광야에서 구리 뱀이 들어 올려진 것과 비교하셨다. 『구리 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요한 3, 14~16). 구리 뱀을 바라보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생명을 건졌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신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참으로 신비중의 신비이다. 초대 교회 교부들의 십자가 찬미는 참으로 아름답고 심오한 진리를 담고있다. 로마의 히뽈리뚜스의 찬가 (讚歌)중에 어떤 구절은 십자가를 생명의 나무로 규정하여 표현하고 있다: 『땅에서 솟아나서 하늘에 이르는 이 나무, 우주의 지렛대요 그 주춧돌이 되니. 오 십자가, 신비로운 춤을 이끌어 가는 이여!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다시 땅에서 하늘로 오르는 엄위하신 하느님의 빠스카여! 만물의 새 축제여! 우주의 완전한 재결합이여! 기쁨, 영광, 희열, 황홀, 검은 죽음은 그대로 말미암아 근절되니, 생명이 우주에 퍼지고, 하늘 문이 열리는 도다』(De Pascha Homilia 6).
십자가가 지니고 있는 범우주적이고도 영구적인 속죄의 힘은 유다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까지 그 손이 미치는 힘이 있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 나무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의 역사(役事) 가 모든 이들에게 분명히 드러났다. 그분의 손은 모든 인간들을 한데 모으시기 위해서 뻗쳐진 것이다』(Adv. Haer. 5, 17 ). 십자가의 범우주적 의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인식이 성 안드레아의 위경에 아름답게 묘사되어있다: 『오 십자가여, 나는 그 신비를 아노라, 그대가 몸을 일으킨 까닭을. 그대가 이 세상에 굳세게 뿌리박음은, 불안정한 곳에 안정을 주려 함이요, 그대가 하늘 끝에 닿음은, 「말씀」이 그리로 부터 내려오심을 알리려 함이로다. 그대가 좌우로 뻗음은, 무서운 원수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세상을 하나로 묶으려 함이요, 그대가 땅의 심연에 굳건히 섬은, 지상과 지하의 것들을, 천상의 것과 융합코자 함이라. 오 십자가, 전능자의 구원의 연장이여, 오 십자가, 그리스도의 승리의 표상이여, 오 십자가, 지상에 뿌리박고 천상에서 열매맺는 이여, 오 십자가의 이름이여, 세계가 그 속에 담겼어라. 찬미 받으라 오 십자가, 그대의 팔이 우주를 안았도다. 찬미받으라 오 십자가, 볼품없는 모습에 영광스러운 신비를 감추고 있도다』(Martyrium Andreas, 19, 참고. 저의 졸저 「십자가의 신비」분도출판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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