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대축일, 삼위일체 대축일,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등, 연이어 있던 대축일들이 다 지나고 이제는 참으로 평범한 「연중 주일」이 다시 계속된다. 그리고 어느덧 7월이 되어 무더운 여름날이 계속되니, 우리는 자칫하면 일상생활의 「권태」에 빠지기 쉽다. 오늘 복음은 바로 권태에 빠지기 쉬운 우리들을 일깨워 주는 말씀이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극심한 생의 위기 속에서 예수님께 다가가는 두 신앙인을 만난다. 한 사람은 어린 딸을 어떻게든지 살려보려고 예수님께 찾아와 겸손하게 발치에 엎드려 간청하는 야이로라는 회당장이고, 다른 한 사람은 12년 동안이나 하혈하며 고생하던 한 여인이다.
본래, 두 가지 이야기인데, 하나로 잘 연결되어 있다. 이 두 기적이야기를 통해 복음사가는 독자들에게 예수님이야말로 참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선포하고 그분께 대한 믿음으로 초대하고자 한다. 두 이야기가 다 「믿음에서 나오는 용기」를 고무하고 있다. 회당장 야이로는 회당장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개의치 않고 사랑하는 딸의 치유를 위해 용기있게 예수님의 발치에 엎드린다. 그 만큼 예수님을 믿었던 것이다. 병에서 낫기 위해 열두 해 동안이나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다 허사였던 여인도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있게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옷단을 만진다. 바로 이 「믿음의 용기」가 그들을 「구원한다」. 예수님은 하혈하는 여인에게는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안심하고 가거라!』고 말씀하시고 회당장 야이로에게는 『걱정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질문으로 시작된 제자들과의 대화는 치유를 받은 여인의 두려움에 찬 고백을 준비해 준다. 끝으로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직역하면 「구원하였다」). 병이 완전히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거라』고 말씀하시는데 단지, 『낫게 하였다』라고 말하지 않고 『구원하였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하혈하던 여인에게 선사된 치유가 단지 육체적 치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우리들의 체험에서도 많은 경우에 육체적 치유는 「마음의 치유」와 「영적 치유」에로 이어진다.
레위 15, 25~29에 의하면 하혈은 하혈하는 여인을 제례적으로 정결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하혈하는 여인은 하혈하는 동안 공동예배에 참여할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12년 동안이나 하혈하던 그 여인은 병 자체가 주는 아픔도 아픔이었겠지만, 공동체에서 소외되는 아픔도 크게 겪어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안심하고(평안히) 가거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히 작별 인사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파견의 말씀」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의 삶에서 소외되었던 이 여인은 이제 공동체로 돌아가 사람들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평화를 가슴에 안고 살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킨 이야기」의 중간에 삽입된 「12년동안 하혈하던 여인을 고치신 이야기」는 앞의 이야기의 효과를 배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죽어가던 야이로의 딸은, 하혈하는 여인의 일로 인해 예수님의 도착이 지체되는 동안 결국 죽게되는데, 예수님은 바로 이 「죽은」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키신 것이다. 사람들의 곡성과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비웃음도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실제로 죽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세 제자가 그 소녀의 부모와 함께,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이 사건의 특별한 증인으로 여기에 함께 언급되고 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 가운데 이 세 제자만을 대동하시는 장면은 이 곳 외에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의 장면과 「게쎄마니 동산에서의 기도」의 장면이다. 이 세 제자야말로 예수님의 참된 신원이 드러나는 특별 계시 사건의 증인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오늘 주일 복음의 이야기는 마태오 복음서와 루가 복음서에도 전해지고 있는데, 오늘 우리가 들은 마르코 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가 가장 활기찬 문체로 되어 있다. 그런데 마르코 복음사가와 그가 속해 있던 공동체에게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킨 이 사건은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탈리타, 쿰』(마르 5, 41)이라는 아람어로 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탈리타, 쿰』은 번역하면 『소녀야, 일어나거라!』를 뜻한다. 『탈리타 쿰』이라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 좋겠다. 특히 오늘 복음에 나오는 하혈하는 여인과 야이로의 경우에서처럼 아무런 출구도 보이지 않는 듯한 상황에서 이 말씀이 기억된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탈리타, 쿰』(『소녀야, 일어나거라』)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주님께서 죽음의 세력까지도 제압하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믿음을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하더라도 주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으신 분이시라는 것, 참으로 그분만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굳게 믿으라고 초대한다. 주님은 먼 훗날, 종말 때에 죽음에서 우리를 부활시킬 수 있는 분이실 뿐 아니라, 매일 매일의 우리의 일상 삶에서, 때로는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듯한 우리의 삶을 향해서도 『얘야, 일어나거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일으켜 세우실 수 있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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