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초기 교부 시대의 영성
1) 교회의 구조
“성체는 불멸의 약”
성찬거행을 중심으로 교회의 뼈대가 엮어지고 영성생활이 형성되어 갈 때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안티오키아의 주교 성 이냐시오(110년 순교)였다. 그는 뜨라야누스 황제 당시 주님을 증거하다가 붙들려 로마로 끌려가면서 여러 교회에 일곱 통의 편지를 보내었다. 그는 주교 중심의 교회를 강조하였다.
주교가 사제단에 둘러싸여 부제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신자들과 더불어 성찬을 거행하는 곳에 교회의 본 모습이 드러난다고 강조하였다. 성체는 불멸의 약이자 죽음의 치료제였다. 그는 성찬 공동체를 떠나서 주교와 분리된 이는 누구나 교회로부터 분리되며 영생을 주시는 하느님과의 관계도 곤란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리하여 교계중심적 교회와 성사중심의 교회의 모습이 강력하게 등장하였다.
주교는 성찬 거행을 통하여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의 머리로 이해되었고 이를 무시하는 자는 하느님을 무시하고 그분과의 관계가 깨어진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교계제도 안에서 성찬중심의 영성이 싹트게 된 것이다. 그 후 로마의 히뽈리또 주교의 저술 '사도전승'에서도 성찬과 주교를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영생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이냐시오의 사상이 그대로 드러나며 이 정신은 오리게네스와 성 치쁘리아노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지나칠 정도로 제도주의와 율법주의를 강조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금언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러나 그 당시 상황으로 보아 이런 견해는 교회 전체가 필수적인 것으로 가정했던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성찬 중심의 교회는 ''내 살을 먹지 않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영생을 누릴 수 없다''H라는 요한 복음의 가르침이 사도 성 바오로를 통하여 초대 교회 안에 두루 퍼져있었다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여기서 나오는 영성의 배경은 성령 안에서 이루는 일치와 친교의 공동체이다. 주교는 이 공동체의 책임자이자 머리이다.
그러므로 한 공동체에는 하나의 주교가 있어야만 했다. 325년에 개최된 첫 번째 공의회(니체아 공의회)의 규정 8에는 한 도시에 한 명 이상의 주교를 금지하였다. 그리하여 하나의 성찬, 하나의 주교, 하나의 교회라는 원리가 확립되었다.
성찬 중심의 영성은 먹고 마시는 인간의 삶을 중시하였다. 인간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빵과 포도주는 주님의 제단에서 거룩해진다는 영성이 등장하여 물질적인 것을 경시하고 배격한 신플라톤주의와 영지주의를 반대하게 되었다.
2) 영지주의 도전
물질을 ‘惡’으로 규정
영지주의는 헬레니즘 시대의 사고방식의 하나로서 교회에 영향을 주었다. 영지(靈知, gnosis)는 지식을 의미하나 이 사상은 두 가지 면에서 교회에 도전하였다. 첫째는 그 사상이 물질 세계의 창조를 하느님이 아닌 데무르고스라는 신에게로 돌렸다는 데 있다.
이 신은 인간이 경험하는 악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며 이 신의 영역은 물질 안에 있다. 그러므로 물질은 악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를 피하기 위하여 지나친 금욕주의와 모든 윤리적인 제한을 멸시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두 번째로 이 사상에 물든 이들은 특권을 지닌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신적 지식이 계시된다고 보았다.
성 이레네우스(202년 경 순교) 주교는 ''죽음을 치료하는 해독제''인 성체를 강조하여 영지주의의 첫 번째 특성을 반박하였다. 성인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물질 세계는 좋은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역사와 시간 안에 인간사에 개입하신다.
하느님은 아담을 만드셨고 역사를 만드셨으며 온전한 자유로 행하신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영지주의를 배격하였다. 영적인 사람은 각자의 몸을 통해서 물질 세계를 하느님과 연관시키고 썩지 않기 위해서 하느님의 영을 받는다.
이레네오 성인은 영혼의 불멸만으로 죽음을 대면하는 그리스도 인들에게 충분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는 사후에 몸이 부활한다는 믿음을 강조하였고 이를 통해서만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쳤다.
이 부활은 성령의 활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성령은 성찬식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일치를 유지시키신다. 몸의 부활을 고대하지 않는 영성은 그리스도교 영성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그는 특권을 받은 일부 몇 사람에게 지식이 주어진다는 사상도 반박하였다.
사도들과 그 이후에 생활한 이들은 그 이전 사람들보다 탁월하게 참된 지식을 지니게 되었다. 왜냐하면 세례를 통하여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누구나 하느님과 맺는 관계를 통해서 지식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이 주장을 통하여 특권을 받은 소수의 몇 사람에게만 지식이 주어진다는 사상을 반박한 것이다. 이 가르침은 구원의 지식을 지적인 영역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 두었기 때문에 성서적 접근과 이웃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영성, 즉 사랑과 친교의 영성으로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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