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성숙하지 못한 신앙행태에 관하여 몇가지 사례를 들어서 고찰하였다. 이제 신앙의 정상적인 구조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신앙도 인간의 인식작용의 하나이기 때문에 먼저 인간 인식의 여러 단계를 생각해 본다. 인간이 무엇을 알고자 할 때에 그 대상이 되는 사물의 이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의문이 생긴다. 의문은 모든 인식의 출발점이다. 의문이 없으면 어떤 것을 알려고 하지 않거나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의문은 어떤 사물에 대한 한정된 의문이라야 그 의문을 풀기 위한 노력이 뒤따른다.
그렇지 않고 자기가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까지 의심한다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다. 이러한 의문은 보편적 의문이라서 인식의 출발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인식의 출발점으로서의 한정된 의문을 방법적인 의문이라 한다.
의심나는 사물의 이치를 조금씩 이해하면서 차츰 그 사물에 대한 자기나름의 의견을 가지게 된다. 의견도 처음에는 유동적이지만, 이치를 터득한 분량에 따라서 의견이 차츰 확고해진다. 더욱이 동일한 사물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한다면 상당히 확고한 의견이 성립된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의견일치는 사물에 대한 개연적(蓋然的) 인식에 도달한 것(Probability)이지 그 사물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아는 것이 아니다.
연구 관찰된 사물의 이치가 대부분 또는 거의 완전히 드러나면 그 사물에 대한 지식이 성립된다. 사물에 대한 지식이란 그 사물이 왜 그러한지 그 이유 내지 원인이 밝혀졌을 때에만 성립된다. 그래서 어떤 사물이 결과나 현상만 파악하고서 그 사물에 대한 지식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요약하면, 사물 이치의 자명성(自明性)에서 인식의 확실성이 생기고, 사물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 지식이며,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진술한 것이 학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의견에 이르고, 의견이 발전하여 지식에 이르고, 지식이 확대되어 추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인식작용은 인간의 지능의 활동이다. 인간의 의지는 지식탐구를 촉진하고 격려하는 작용을 할 수 있지만, 지식을 형성하는 능력은 아니다.
그래서 인식작용에 의지가 지나치게 간여하면 편견이나 고집에 떨어지게 된다. 지능의 직접 대상은 진리이고, 의지의 직접 대상은 선이기 때문에, 진리인식은 지능의 작용이고, 의지는 외부작용으로 인식작용을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쉽게 말해서 공부를 하는 일은 지능이 하지만, 공부를 하고 싶게 하는 일은 의지가 한다고 이해하면 충분하다.
그런데 모두에게 말하기를 신앙도 일종의 인식작용이라 하였으나, 여기에는 지능 뿐 아니라 의지도 크게 작용하는 특수한 인식이므로 다음 호에서 상세히 분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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