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있었던 감동적 남북정상회담 이후 현재 「북한선교」에 대한 관심은 우리 한국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무척 고조되어 있다.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마침, 오늘 주일 복음에서 예수 께서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하시는 말씀은 우리가 '선교'를 하는데 있어서 어떤 자세를 근본적으로 가져야 하는지를 분명히 가르쳐준다.
오늘의 복음말씀을 묵상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상태에 있던 열두 제자가 파견되었느냐는 점이다. 열두 제자는 파견되기 전에 충분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마르코 복음서에 의하면 거쳐야 할 준비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참조: 마르 3, 14). 예수님으로부터 파견되어 떠나기 전에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머물면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놀라운 행적들도 목격하면서 그분이 누구신지를 배워야 했다. 무엇보다도 그분의 「사랑의 마음」을 배워야 했다. 즉, 「예수님께 머물러 있음」은 「파견되어 그분의 일을 하기 위한」조건이었다.
이렇게 당신과 함께 머물러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당신의 권능을 주시며 파견하신다. 실제로 제자들이 파견되어 가서 하는 일은 예수께서 하신 것과 같다. 예수께서 하셨던 것처럼 파견된 제자들도 『회개하라』고 가르치며, 『마귀들을 쫓아내고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준다』. 제자들이 할 일은 그들 자신의 일이 아니라, 파견하시는 분이 하시던 일이다.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다』라고 되어 있는데, 예수께서 제자들을 『둘씩 파견하신』 이유는 우선 서로 돕고 격려할 수 있도록 한다는 실천적 이유도 있겠지만, 신명 19, 25에 나오는 것처럼 합법적인 「증언의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두 사람 이상의 증언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예수님의 이 파견에서 「복음선포」가 어느 개인의 일이 아니라는 것, 더 더구나 「독불장군식의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가르쳐 준다고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파견하시면서 훈화의 말씀을 하시는데, 여행을 하는데 당장 꼭 필요한 지팡이와 신고 있는 신발과 입고 있는 속옷 한 벌 외에는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제자들은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물에 의존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오직 「주님」과 「주님의 능력」을 굳게 믿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기댈 곳조차 없습니다』(마태 8, 20)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처럼, 그분으로부터 파견되는 제자들도 물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삶을 각오하라는 말씀이다. 사실, 신구약성서 전체를 일관하여 흐르고 있는 중요한 가르침 중의 하나는 파견 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점은, 이러 저러한 구체적 능력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파견하시는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 곧 그분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다.
『어디서 누구의 집에 들어가든지 그 고장을 떠나기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일신의 평안을 위해 이 집 저 집 더 좋은 집을 찾아다니지 말고, 한 집에 겸손하게 머물러 있으라는 것을 뜻한다. 또한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배척받을 경우도 미리 예상하시며 말씀하시는데, 「발에서 먼지를 털어내는 행위」는 제자들을 배척하는 그 고을에 속한 것이라면 먼지까지도 떨어버림으로써 그 고을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사도 13, 51에 의하면 사도 바오로와 발라바는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그들을 배척하는 그 도시를 떠날 때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떠난다』
여행에 당장 꼭 필요한 것 외의 다른 것들은 포기하라는 오늘 복음의 말씀은 하느님 나라가 임박해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의식하고 있는데서 나온 지침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말씀은 주님으로부터 파견되는 사람들은 파견하시는 주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 속에 살기 위해서 청빈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는 점이다. 그런데 청빈의 삶은 파견된 사람들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겸손 하게 투신하며 살기 위하여도 필요하다. 청빈의 삶은 제자들을 겸손하게 하고, 불필 요한 욕심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자유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같은 분들이 살았던 자유가 아니었던가. 몸이 비대 해지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는 것처럼, 너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에 대하여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져, 남을 위하여 움직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빨리 그리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위해서도 파견된 사람들은 청빈과 나눔의 정신 속에 살 필요가 있다. 이러한 청빈과 나눔의 정신에 대하여 예수님은 여러 기회에 강조하셨다.
교회의 초창기 역사는 가난과 박해로 점철된 역사였다. 우리 한국교회의 초창기는 더욱 더 그러했다. 가난과 박해 속에서도 의연하게 하느님을 고백하며 살았던 순교자들의 고귀한 피를 밑거름으로 삼아 오늘의 한국교회가 성장했고 그 열매를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교회의 모습은 어떤가? 욕심은 만악(萬惡)의 뿌리다. 그러기에 교회가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고 열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처럼 청빈의 정신을 결코 잃지 말아야 한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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