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영적 가르침
신비 신학자 십자가의 요한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한 여정의 안내자로서 독특하고 차원 높은 영성을 정립하였다. 신앙의 궁극 목적은 하느님과의 일치이며 그것은 부활 후 저 세상에서만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방법 추구에 대한 신비 사상은 우리에게 현실적 삶의 지침이 된다.
그는 인간의 본성과 나약성을 깊이 파헤치면서 그러한 인간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방법과 과정을 향주 삼덕 (신덕, 망덕, 애덕)에 기초하여 제시한다. 그는 인간이 철저하게 벗어 던지고 끊어야 하는 자기와의 싸움의 근거를 신앙 안에 두면서 완전한 무(無:nada)가 될 수 있을 때 영혼은 완전한 전부(全部:todo)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때 그분과 함께 부활할 수 있다는 신비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자신의 체험 고백으로서 성서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교부들의 전통과 교회의 정신을 잘 수용 하고 있다. 십자가의 요한은 그의 저서를 통해 영적으로 진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체험하며 걷고 있는 완덕의 길을 안내하고자 온 힘을 다 기울인다.
1) 완덕의 길
하느님과의 합일을 위한 여정
그 완덕의 길은 오직 하나 뿐인 하느님과의 일치로 향하는 길이다. 이 길에서 인간적 및 영적 기쁨이나 만족들은 배제되어 있다. 그는 이 영적 여정에 나가는 데 도움이 되도록 베아스의 가르멜 수녀들에게 「완덕의 산」을 그려 설명해 주었는데 그 그림은 그의 사상을 집약하여 잘 표현하고 있다.
완덕을 향한 여정의 출발은 비록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내적인 자세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완덕의 산은 가르멜의 산길인 좁은 길(무의 길)을 걸어 가야한다. 그렇지 않고 지상적인 불완전한 길(지상의 것에 대한 만족) 이나 천상적인 불완전한 길(영적 만족)을 통해서는 정상에 도달할 수 없다. 좁은 길은 하느님의 사랑과 영광만이 주재하는 산의 정상을 향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의 영적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복음적이며 성삼위의 신비에 입각한 것이다. 그는 완덕에 나아가는 길에 대하여 매우 낙관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가 저서들을 통해 가르치는 완덕에의 길은 관상생활에 불린 이들에게 적합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관상하는 것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그에 의하면 완덕의 절정에 이른다는 것은 세례성사의 은총을 꽃피우고 열매 맺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능력의 한계와 죄를 짓는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통하여 변화될 수 있으며, 아버지의 뜻과 일치하시던 그리스도의 기도 자세를 본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을 수용할 수 있도록 인간 편의 준비와 협력 그리고 철저한 비움의 노력이 전제된다는 것을 그는 거듭 강조한다. 그는 밤의 상징과 불로 인하여 변화된 나무의 상징들로 그 모습을 표현한다.
십자가의 요한은 완덕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영성의 근본적인 전망을 제시할 뿐 아니라, 체험을 통해 그곳으로 이끌어 주는 모범적 스승 역할을 한다.
2) 하느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십자가의 요한에게 하느님의 초월성은 구체적인 영적 판단의 원천이다. 하느님이 모든 것을 초월하신다는 것은 그분의 위대하심이 인간의 상상의 한계를 초월하기 때문이기 보다 그분의 선하심과 아름다움이 모든 선과 아름다움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랑이나 자애와는 도무지 비교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하느님이 초월적인 분으로만 머물러 계신다면 인간들은 결코 그분께 도달할 수 없다. 하느님은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모든 것을 초월하고 계시는 분이시지만 또한 언제나 당신을 드러내시고 내어주시어 인간들이 그분과 함께 머물면서 대화하고 함께 지낼 수 있게 되길 원하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느님의 사랑과 자애는 하느님의 초월적 특성이지만 더 나아가 하느님의 내재적 특성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내재성 때문에 우리들이 그분을 인식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으며 사랑할 수 있다.
예수님의 강생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조화를 잘 드러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초월적인 모습을 구체적으로 나타내 보이신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십자가의 요한의 영성적 가르침의 중심이다.
그는 믿음을 통해 얻게 되는 인식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지식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일반적인 지식도 인간이 하느님께 나아 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어떤 지식도 믿음 외에는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도록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지상에서 얻을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초월적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분이 먼저 인간에게 믿음을 통하여 알려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말로 표현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지만, 그분께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다리가 있는데 그것은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그에게 믿음은 하느님께 일치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방법이지 어떤 이상적 관념이나 이론적 지식이 아니다.
3) 신앙을 표현하는 상징들
십자가의 요한은 자신의 신앙 체험을 표현하고자 여러 가지의 상징적 용어들을 사용하였다. 길, 산, 밤, 샘, 불꽃 등이 그것이다. 그는 「길」이란 상징적 용어를 통해 인간이 하느님과 합일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취할 신앙적 자세와 과정을 가리킨다.
「산」은 걸어올라 가야할 높은 목표로서 하느님의 성성에 참여하는 것,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르는 것을 상징한다. 「샘」이란 새로 태어남, 성령의 살아있는 물 등을 뜻하며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신앙의 적극적인 면을 표현한다.
그리고 「불꽃」은 사랑, 빛, 따뜻함, 신앙 체험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밤」혹은 「어둔 밤」은 십자가의 요한의 상징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그는 영혼이 하느님께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밤' 이라고 한다.
이 밤엔 세 단계가 있다. 우선 하느님께 나아가는 출발점에서 인간은 깜깜한 밤을 느낀다. 정화되지 못한 삶엔 모두가 밤이기 때문이다. 끊고 물리쳐야 할 온갖 욕(慾)에 사로잡혀 있기에 앞길이 캄캄한 것이다.
이 어둠은 요한 복음사가가 자주 언급하는 「빛과 어둠」의 싸움에서 알 수 있듯이 무절제한 경향에로 기울기 쉬운 인간의 죄를 뜻한다. 둘째 단계는 인간이 점차 믿음을 통하여 어둠의 상태에서 벗어나며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어 가지만 여전히 믿음의 어둔 밤 길을 걸어가게 된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인 믿음은 이성(理性)에게는 언제나 밤과 같이 어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단계에 이르러 밤은 조금씩 안정되고 어둠에 친숙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지만 「믿음의 밤」상태는 여전하다.
이 마지막 도착지에 이르러서도 인간이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인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원한 빛은 너무 강해서 아직 이 세상의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바라볼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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