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무엇을 알고자 할 뿐 아니고, 많은 것을 믿고 산다. 실제로 우리 앞에 나타난 많은 사물의 내적인 이치나 이유를 잘 모르면서도, 그것이 나에게 어떤 좋은 것을 주기 때문에, 또는 나에게 제시하는 분의 권위 때문에 그것이 그렇다고 인정하면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지성과 의지가 합작하여 자명(自明)하지 않은 사물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행위를 믿음이라 한다.
인간생활의 많은 분야가 이런 믿음을 기초로 해서 성립된다. 사람이 행위를 할 때마다 알고서 해야 한다면 평생에 몇가지 행위 밖에 못할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자연계의 정상 상태와 조건들을 믿고, 사람들의 상식적 행태를 믿고, 국가나 사회의 기능을 믿고, 하느님을 믿으면서 생활할 수 있다.
인간 상호간의 믿음을 신용이라 하고, 인간 이상의 어떤 위대한 존재에 대한 믿음을 종교적 믿음 또는 종교심(宗敎心) 이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착각하기를, 여러가지 자칭 타칭 종교들은 믿는 대상이 다를 뿐이고 믿는 행위는 다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리스도교의 믿음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종교적 믿음에도 차원이 다른 두가지 단계가 있다. 그 초보단계를 종교(Religiosity)라 하고, 그 위의 단계를 신앙심(Fides(라), Faith(영), Foi(불), Glauben(독))이라 한다.
종교심은 종교적 믿음의 초보단계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지만, 실제로 그 행복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의 힘만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인간 이상의 어떤 큰 힘에 의지하여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이러한 의지하는 마음이 종교심이다. 인간 이상의 힘을 자연물이나 인간이 만든 우상에게 기대하는 것을 미신이라 하고, 어떤 인격이나 신격(神格)에 의지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종교라 한다.
그래서 종교심은 인간 본능의 하나이지 결코 예외적인 특수 현상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이 어떤 종교를 가진다는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오히려 아무런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그는 유물론자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종교심의 발로현상이다. 그런데, 많은 종교들 가운데서 역사적 순서대로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회교) 이 세가지 종교는 절대자이신 하느님을 믿는 소위 천계(天啓)종교라한다.
즉 유일신 하느님의 계시를 믿는 종교이며, 이들도 종교심을 바탕에 두고 있지만 그 위에 신앙심을 요구한다. 물론 이 세가지 종교의 신자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신앙심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종교심의 단계에 머물고 있는 사람도 흔히 있다. 소위 기복(祈福)단계에 있는 사람이다.
결론으로 말하자면, 종교심은 인간의 본능에 불과하므로 종교심만 가지고는 초자연적 생명인 영원한 구원에 도달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라도 종교심을 신앙심으로 승화시켜야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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