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요한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에서 그가 체험한 믿음의 단계들을 구분하여 서술한다. 그 단계들은 오리게네스, 닛사의 그레고리오, 위 디오니시오 등 교부들의 전통적 가르침과 유사하다.
전통적 구분은 정화의 단계(초심자), 조명의 단계(진보자) 그리고 일치의 단계(완성자)를 포함한다. 십자가의 요한은 자신의 체험에 비추어 「믿음의 밤」을 중심으로 초저녁 (감각의 밤 : 초심자), 밤(영의 밤 : 진보자), 새벽(영적 혼인 : 완성자), 낮(영원한 영광 : 하느님 대면)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로 나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엔 순탄한 지름길이 없다. 거기엔 하느님 편의 자비로운 부르심과 인내로운 가르치심이 있고, 인간 쪽의 응답적 협력으로 수덕과 성숙을 위한 정화의 시간이 요청된다.
우리는 여기서 마지막 과정인 낮(영원한 영광)의 단계에 이르게 하는 앞의 세 단계를 살펴본다.
1) 첫째 단계 : 초저녁
(감각의 밤 또는 정화)
십자가의 요한은 감각 세계 자체를 인간의 성화와 구원에 있어 나쁜 것이거나 장애물 되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대응 및 사용 자세에 따라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영혼의 진보를 방해하고 해를 끼치는 것은 이 세상의 사물들이 아니라 그에 대해 인간이 집착하는 '욕망과 그 맛' 이라고 한다. 따라서 영혼이 성취해야 할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감각적인 모든 맛과 모든 만족을 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단계는 감각적 쾌락 안에서 누리던 모든 낙을 끊고 보다 높은 영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자신의 의무 수행이나 애덕의 실천, 기도, 묵상, 독서, 고행의 실천 등에 전념해야 하는 단계이다. 그는 이런 감각의 정화를 「감각적인 것에서 떠남」이라고 표현하며 정화의 규범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음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그분의 신비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더욱 성화되기 위해서는 더욱 긴밀히 그분의 신비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단순한 스승이나 모범이 아닌 「사랑해야 할 스승」,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제시한다.
나) 감각들에 대한 정화
예수님을 사랑하고 본받는 행위는 무엇보다 먼저 인간의 의지를 모든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포기로 향하게 한다. 십자가의 요한은 자아포기의 이유와 원동력을 예수께 대한 사랑과 본받음에서 찾길 권한다. 예수께서는 지상 생애 동안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것 외엔 다른 어떤 즐거움을 원하거나 찾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다) 욕(慾)에 대한 정화
인간은 즐거운 것에 집착하도록 하는 감감적 욕망들을 정화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감각이 요구하는 것들을 끊는 것만으로 충분치 못하고 본성적인 욕망들에 반대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원하고 실천함으로써 그 욕망들에 반격을 가해야 한다.
라) 자애심으로부터 정화
교활한 자기 만족, 자신에 대한 미묘한 친절 마저 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자애심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불가능하게 한다. 십자가의 요한이 강조하는 「자아 포기」는 언뜻 보기에 절대 부정에 이르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절대 긍정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히 죽는 것만이 그분과 함께 완전히 부활한다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2) 중간 단계 : 조명의 길
십자가의 요한은 「감각의 밤(정화)」을 설명한 후 「영의 밤(정화)」에 들어가기 전의 중간 시기에 대하여 말한다. 이 단계는 어떤 이에게는 길고 또 다른 이에게는 짧은데, 하느님께서 그 사람의 내적 상태에 따라 다르게 그분의 업적을 이룩하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어떤 때는 조이시고 엄하게 다루시며 어떤 때는 관대하게 인도하신다. 즉 「어둔 밤」도 있고 「고요한 밤」도 있다는 것이다. 이 중간 시기에 영혼은 관상을 체험하면서 하느님과 더욱 친밀 해지는데 그것은 감각의 정화에 들어가기 전엔 체험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조임도 나타나는데 그것은 다가올 '영의 어둔 밤' 의 전조로서 영의 메마름과 시련의 어둔 밤이 오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3) 둘째 단계 : 밤
(영의 밤 또는 정화) 이 때의 유일한 안내자는 「믿음의 밤」뿐이며 정화는 지성 뿐 아니라 기억, 의지 등 인간 전체에 해당된다. 영의 정화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
가) 육체의 외적 감각에 의한 지식
나) 육체의 내적 작용에 의한 지식(묵상, 시현, 계시, 영의 말씀, 예언 등 내적 감각에 의한 것들)
다) 순수한 영의 지식(지적 시현, 계시, 내적 말씀, 의지적 감정 등 지성에 의한 것들)
십자가의 요한은 다른 신비가들과 달리 시현(示顯)이라든가 감각적인 것 또는 이상한 현상들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그는 그와 같은 시현 등 초자연적인 것들에서 위로를 찾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것을 위험하고 잘못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오로지 믿음이라는 빛에만 의존 하기를 권하다. 어둔 밤을 친히 체험한 그는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 순수한 믿음의 길을 설명한다.
요한의 영성적 특징 중의 하나인 「부정적」(apophatic)인 면은 사건이나 사실, 사물에 대해 부정을 위한 부정, 단순한 거부로서의 부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무한하신 하느님은 지성, 기억, 의지 등 영혼의 기능으로는 온전히 다 파악할 수 없는 분이시기에 향주 삼덕(신덕, 망덕. 애덕) 으로 변모될 때 하느님께 이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향주 삼덕을 영혼의 세 능력에 짝을 지우고(지성-신덕, 기억-망덕, 의지-애덕), 하느님과의 여정에서 영혼이 정화되어야 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4) 셋째 단계 : 새벽 (영적 혼인)
이 단계는 「영적 혼인」이란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상징은 오리게네스, 베르나르도, 아빌라의 데레사 등 여러 신비가들의 저서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성서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아가」「호세아서」에서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의 관계를 상징하면서 사랑의 만남, 기쁨, 충실성 및 책임감 등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정배』(에페 5, 22~33) 라 부른다. 영혼이 하느님과의 합일을 이루기 위해선 정화의 기나긴 여정을 거쳐 순수성에 도달해야 한다. 정화 혹은 무(nada)는 하느님과의 합일에 합당한 자세를 갖추도록 영혼을 준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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