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11장을 신명기적이 역사서와 율법서의 서론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면 오늘의 본문 12장 부터는 「신명기 법전」으로 구성되어있다 (12, 2~26, 15). 신명기 법전이란 여로보암 2세때 시작하여 기원전 8세기초에 형성된 법전 으로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삶과 사회 생활전반을 위하여 규정된 법전이며 계약의 법전과 비슷하다. 신명기 법전은 『하느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참 하느님이신 야훼와 함께 살기 위한 하나의 호소이다』라고 까젤(H. Cazelles) 은 말한다. 무엇 보다 유일하신 야훼 하느님만을 섬기고, 그 다음 빈익빈 부익부를 없애고 즉, 가난하고 억압받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한 것이 신명기법전의 과제중의 하나이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동등한 자녀들이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땅의 모든 소출들은 특권계급 없이 서로 골고루 나누어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있다.
신명기 12장 첫머리에서는 「적극적인 신앙의 자세」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우상과 우상을 섬기던 제단과 그 자리를 송두리째 뽑아 없애 버려야 한다」는 규정과 법령을 매우 강도 높게 구체적으로 강조하고있다. 한마디로 하느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이방인의 신과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가나안 지역에는 참으로 신들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신이 바알신이고, 밀곰신, 그모스신, 몰록신 등 수없이 많은 우상 들을 섬겼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는 그 모든 신들의 조각품이나 제단들을 아낌없이 모조리 부수어 버리라고 명하셨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오늘 우리시대에 이르기까지 우상숭배는 세상 어디에서나 끊임없이 성행되고 있다. 현대 미국같은 세계 제일의 선진국가에서 그것도 크리스찬의 나라에서 그들의 독립기념일에 뉴욕항구 언덕에 「자유의 여신상」을 세워놓았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역사는 야훼 하느님의 신앙과 다신교의 바알신앙과의 투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시호, 「중근동 기독교」성지 참조). 고대의 나라들 사이의 전쟁은 무력투쟁이 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섬기던 수호신들의 싸움이기도 했다. 그래서 전쟁의 승패는 곧 신들의 승패이기도 했다. 바빌로니아 제국의 승리는 「말둑」신의 승리였고, 로마제국의 승리는「주피터」신의 승리를 뜻했다. 2000년전에 레바논 바알벡에 세운 아름 다운 주피터 신전은 바로 로마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최고의 신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세워진 신전이라 한다. 이는 로마의 신이 세계최고의 신이라는 것을 제국 내에 선포하고 로마제국의 힘과 권위를 과시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했을 때 바알 신앙을 신봉하는 가나안족을 모조리 뿌리뽑아 없애버리지 못하고 그들과 혼거 해 살았기 때문에 바알신앙은 유대 사회에 깊숙이 침투하였다. 통일왕국의 사울도 아들하나의 이름을 「에쉬 바알」(Esh-Baal) 이라 불렀다. 이는 『바알의 사람』이라는 뜻이다(역대기 상 8, 33). 요나단은 「메립 바알」(Merib-Baal) 즉 『바알이 주장한다』는 뜻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었고, 솔로몬은 외국여인들을 부인으로 맞아들여 그들의 아들을 두었으며 심지어는 야훼의 성전 가까운 산에 신당을 짓게 하고 자신도 그 신당에서 올려지는 제사에 참여하였다고 성서는 전하고있다(열왕기 상 11, 5~33).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남북이 갈라진 이후에도 바알신앙은 유대 유일신 사상을 크게 위협하였으며 결코 그들은 이방인들의 신과 야훼하느님을 혼합하여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했으므로 앗시리아와 바빌로아로 부터 각각 정복당하고 유배를 갔으며 그래도 정신 못차려 나중에는 로마제국의 속국까지 되고 만다. 구약의 엘리아와 엘리사 선지자는 일생을 바알신앙의 척결을 위하여 싸웠고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창녀의 소굴이 된 것을 개탄하였다(이사야 1, 21).
오늘 본문에서는 『말끔히 허물어 버려야한다』, 『무너뜨리고 불태워 버려야한다』, 『지워 버려한다』, 『쏟아 버려야한다』, 『송두리째 뽑아 버려야한다』, 『반드시 죽여야한다』 『다시는 없게 해야한다』, 『말끔히 없애 버려야한다』, 등등의 매우 과격한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이렇게 표현된 법규를 히브리어로 「비아르따」(biarta) 법규라한다. 신명기 저자는 이것을 많은 예언자들에게 적용시켰다. 이러한 표현들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은 한분이시요, 백성도 하나, 따라서 하느님과 인간 과의 관계인 종교도 하나뿐이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오늘 우리 세상은 수많은 종교가 세상을 덮고있어 종교간의 대립이 여간 복잡하고 심각하지 않다. 그런데도 2000년 대 희년을 맞이하여 국내에서도 대표적인 종파들이 서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은 그나마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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