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앙과 희망, 사랑의 관계
더 정확하게 말해서 신덕과 망덕과 애덕의 관계를 보자. 한문세대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그리스도교적 특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신덕,망덕,애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엄밀한 의미로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덕목은 신덕,망덕, 애덕뿐이고, 다른 많은 윤리 덕목들은 그리스도교 밖에서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덕,망덕,애덕 세가지를 특히 대신덕(對神德)이라 한다. 대신덕은 그 동기가 바로 하느님께 있는 덕이다. 즉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것이 신덕이요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께 바라는 것이 망덕이요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애덕이다.
물론 믿는 다는 것과 바라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행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신덕과 망덕과 애덕은 그 직접 대상(object)이 하느님 자신이고 그 동기(motive)가 하느님이기 때문에 비록 행위는 서로 다르지만 신덕 망덕 애덕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 세가지 대신덕은 다 인간이 직접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덕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참다운 신덕이 없으면 참다운 망덕이나 참다운 애덕이 성립될 수 없고 참다운 망덕이 없으면 신덕이나 애덕이 성립될 수 없고 참다운 애덕이 없으면 신덕이나 망덕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덕,망덕,애덕은 하느님을 직접 만나는 대신덕의 세가지 국면(aspect)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하느님을 직접 만난다는 말은 다른 피조물의 중개(仲介) 없이 사람이 하느님께 나아간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신덕을 향주덕(向主德)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신앙 행위를 분석하면서 망덕과 애덕에 언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리 신앙이 인간 구원의 출발점이라 할지라도 나는 피조물의 본분으로 하느님을 믿을 뿐이고 하느님께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면 또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의 알량한 그 믿음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결국 인간의 구원이란 현세에서 하느님을 믿고 그분이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을 갈망하고 그분을 불완전하게나마 사랑하던 것이 완성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닌가! 현세에서는 신덕과 망덕과 애덕으로 하느님을 만나지만 구원이 완성된 상태에서는 믿음과 바람은 성취되었으니 더 존속될 이유가 없어지고 오직 영원한 사랑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이므로 결국 신덕과 망덕은 애덕의 완성을 지향하는 현세에서의 과도적(過渡的) 덕목이다.
이렇게 신앙행위의 분석을 마치고 다음부터 신덕과 관계되는 몇가지 본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성숙한 신앙에 필연적으로 관련되는 망덕과 애덕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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