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첫머리에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지나치게 하지 말 것을 기술하고있다. 반세기전만 하여도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죽으면 베옷을 입고 머리를 풀고 며칠씩 곡을 하면서 죽음을 매우 슬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어렸을 적에 우리 이웃에 할아버지 한 분이 돌아가셨다. 멀리 시집간 딸이 긴 머리를 다 풀고 동구 밖에서부터 슬피 울며 들어오는 것이었다. 구약시대 이방인들도 부모나 집안 식구가 죽으면 머리를 풀고 베옷을 입고 식음전폐까지 하며 곡을 할뿐 아니라 심지어는 산사람의 몸을 상하게 칼로 상처를 내며 죽음을 애도하여야 효자라고 불렀다한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신앙이 없는 자들에게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했으므로 슬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자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다. 죽음이야말로 오히려 참 삶의 시작이다. 『교우 여러분, 죽은 사람들에 관해서 여러분이 알아 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 처럼 슬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예수와 함께 생명의 나라로 데려 가실 것을 믿습니다』(1 데살로니카 4, 13~14). 이 얼마나 명확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인가!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몸에 상처를 내거나 앞머리를 밀지 말라』(14, 1~2).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의 몸은 「성령께서 거처하시는 하느님의 궁전」이요,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감실」이기 때문이다.
일년농사의 십일조 규정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는데 (14, 22~23)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상인들은 매일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봉급생활하는 직업인은 매월 봉급의 십일조를 드리고 농사를 짓는 자, 수산업을 하는 자도 매월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데 특히 농사를 마지막 끝내는 추수 때에는 일년의 십일조를 종합적으로 하느님의 성전에 바치는 것이다. 그리고 온 가족이 하느님께 나아가 성전에서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고 살찐 소와 양을 잡고 제사장과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 들과 함께 성전에서 즐거운 감사절기를 지키며 음식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도 초대하여 함께 먹는 것이다. 이것이 유다인의 추수감사절때 지키는 일년농사의 십일조를 바치는 절기인 것이다. 멀리 있는 지방 사람들은 소와 양, 쌀, 포도주를 가지고 가는 것이 어려우므로 예루살렘에 가서 대신 다른 것을 사서 드리려고 자기가 농사 지은 것을 팔아 돈으로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에서 다시 사서 하느님께 드렸다 (24~26절). 그리고 매 삼년 마다 맞이하는 감사절에는 대대적인 축제행사를 모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떠돌이, 고아, 과부들, 농사나 일정한 수입이 없는 사람들을 모두 초대하여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굶주렸던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큰 행사를 행하는 것이다. 신명기 15장에서는 레위기 25장에서 이미 열거한 안식년에 관한 것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는데 오늘 본문 에서는 안식년을 특히 「면제년」으로 강조하고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매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에는 이웃에게 빚진 것을 탕감 받게 되므로 이해를 「면제년」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년에는 땅만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진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주어서 빚을 지고 허덕이는 가난한 사람들도 쉬게 하자는 것이다.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여 약소국가들이 안고있는 빚을 경제대국들이 탕감해주길 바라는 서명운동이 우리 교회 안에서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아무런 반응을 듣지 못하고 있다. 우리 지구는 하나인데 이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국가와 인종들이 하루를 살면서 너무나 다르게 살고있다. 어떤 곳은 흥청망청 먹을 것이 넘쳐 나는가 하면, 어떤 곳은 굶어 죽어가고 있다. 면제년이 일곱번 지난 그 다음해는 희년이라 하여 빚만 탕감 받는 것이 아니라 빚에 넘어갔거나 가난하여 팔아버린 모든 재산을 도로 돌려주는 제도까지 있었다. 하느님께서 면제년이나 희년을 제정해주신 것은 인간 사회에서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모든 것을 공평하게 쓸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언제 우리 사회가 공평하게 나누어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오게될까? 이 신명기의 가르침이 어느 다른 때 보다 시급히 실천 되어져야 할 것은 여기 바로 오늘이다. 실천에 앞서 먼저 신명기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모르는 것이 죄가 되니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