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는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로 복음 전체를 요약하고 있다. 묵주기도를 로사리오라고도 하는데, 이는 라틴어 로사리움 (Rosarium), 장미꽃다발에서 유래한다. 묵주기도 기원은 초기교회 때부터 시작된다. 당시 이교도들은 신에게 자신을 바친다는 의미로 머리에 장미꽃을 엮은 화관을 쓰는 관습이 성행했다. 초기 교회 신자들도 이 영향을 받고 기도 대신 장미꽃다발을 바치기도 했다.
특히 박해 당시 신자들은 사자밥이 되기 위해 원형 경기장안에 끌려들어갈 때, 장미화관을 머리에 쓰고 들어갔다. 신자들은 밤중에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며 떨어진 장미꽃들을 모아놓고, 꽃송이마다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이밖에 은수자들이 죽은 이들을 위해 시편 50, 100, 150편씩을 매일 외우던 관습이 묵주의 기도에 영향을 주었다는 설도 있다. 은수자들은 작은 돌멩이나 곡식 낱알을 둥글게 엮어 하나씩 굴리며 기도 횟수를 셌다. 이때 글을 모르는 이들은 시편 대신 주의기도를 바쳤 는데, 수를 세기 불편해 열매나 구슬 150개를 줄에 꿰어 사용했다.
12세기 들어 삼종기도가 널리 보급되자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도 매우 깊어졌다. 그래서 시편으로 바치던 주의기도를 대신해 성모송을 외우기도 했는데, 이를 「성모의 시편」이라고 불렀다. 여기에 13세기부터는 영광송이 더해져 처음에는 성모송마다, 그후부터는 성모송 열번마다 영광송을 했다. 특히 오늘날 묵주 기도가 활발히 보급되기까지 도미니꼬회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 묵주기도 형식은 13세기 성 도미니꼬(1170~1221)에 와서 더욱 체계화됐는데, 150번의 성모송을 연속적 으로 바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묵상하는 것이「도미니코 묵주 기도」이다.
성 도미니꼬는 당시 이단들이 교회를 위협하자 각 지방을 순회하며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호소했다. 이에 신자들은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쳤고 그 결과 이단 세력은 점차 축소됐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의 환희에 대한 묵상을「묵주기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날과 같은 묵주기도는 15세기에 들어 생겨났다. 도미니코 수도회 알랑 드 라 로슈(Alan de la Roche) 수사는 1464년 예수그리스도의 생애를 강생과 수난, 부활에 따른 환희, 고통과 영광 등 세가지로 나눴다. 이 기도가 널리 퍼져 15단 형식으로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묵주기도이다. 이외에도 성모 마리아의 칠락을 묵상한 「칠락 묵주의 기도」또는 「칠단묵주」라고 불리는 「프란치스코 묵주기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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