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말씀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라는 말로 끝나고 있다. 예수께서는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우선 몇 개의 계명을 열거하신 다음 『이 계명들을 너는 알고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덧붙이신다. 이 말씀에는 질문자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그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러자 질문자는 즉시 『그 모든 것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습니다』라고 자랑스러운 듯이 대답한다. 그런데 이 대답을 듣고 예수님은 그 질문자를 「대견해 하시면서」도 그에게 찬물을 끼얹는 듯한 말씀을 하신다: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예수님의 이 말씀은 루가복음서에 나오는 「부자와 가난한 라자로」의 비유를 보면 이해가 잘 된다. 그 비유에 나오는 부자 사람은 살인강도질이나 도둑질과 같은 큰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으나, 문간에 누워 병으로 괴로워하며 굶주리고 있던 라자로와 같은 사람들을 모르는 체했기 때문에 사후(死後)에 그런 벌을 받아야 했다. 비슷하게 오늘 복음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큰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거나, 율법에서 하라고 명하는 것을 어기지 않았다는 소극적인 삶만으로는 부족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는 것」을 포함하는 실행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사실 율법서 자체는 근본적 으로 이런 사랑의 실천을 강조한다(예컨대 신명기).
예수님은 율법이 가지고 있는 이런 정신을 잊어버리고, 율법서의 문자에만 매달리며 그 문자대로 지켰느니 안 지켰느니 하며 따지고 살던 사람들에게 율법의 근본 정신을 일깨워 주신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 질문자가 위의 예수님의 요청을 듣고 그만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고 적으면서 그 이유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인다. 질문자가 떠나간 뒤에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에는 재물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 나온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가장 큰 짐승인 낙타와 가장 작은 구멍인 바늘귀를 연결시키신다. 문자 그대로 이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부자에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제자들도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서로 수군거릴 정도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나오는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이다』라는 격언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부자를 재물에 대한 애착에서 해방시켜 그를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가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말씀은 참다운 신앙실천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가려낼 수 있는 기준 하나를 오해할 여지없이 분명히 가르쳐 준다. 그 기준이란 바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재물을 나누고 사느냐 아니냐」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질문하였던 부자에게는 하느님의 뜻을 「아는 데」있어서는 탓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 뜻을 「실천 하는 데」있어서도 자신에게는 흠잡을 것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잘 실행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 듯한 이 질문자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결국 「재물에 대한 애착」이라는 '걸림돌' 에서 넘어지고, 예수 추종을 포기하고 말았다.
오늘의 「나」는, 「우리」는 어떠한가?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가 되어 있지는 않은가? 진지하게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섰지만, 「재물에 대한 애착」때문에 「소명의 길」에서 비틀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사실, 복음에 나오는 부자도 「진지하게」「영생의 길」을 추구하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예수님께 『달려와 그 앞에 무릎을 꿇고』질문을 하는 그의 태도와 그의 대답을 듣고 「대견해 하시는」예수님의 긍정적 반응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진지한 태도를 끝까지 견지하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재물은 분명히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데 큰 도구가 될 수 있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그 재물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남아, 결국에는 하느님도 이웃도 다 잊어버릴 정도로 교만과 허영의 도구가 되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도구로 사용될 때, 본디 선물로 주어졌던 그 재물은 구원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되고 만다. 성서는 많은 재물의 소유가 탐욕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자주 경고하고 있다. 성서에 의하면 탐욕은 온갖 죄악의 온상이다. 오늘 복음 말씀은 신앙인 개개인의 차원에서 뿐 아니라, 단체적 차원(교회의 단체, 기관) 에서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말씀이다. 예수님의 정신이 살아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관심사에서 「재물」이 결코 윗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한다. 재물이 윗자리를 차지하면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곳에서는 예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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