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애덕은 현세적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말라…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 2~4).
우리는 가끔 애긍시사를 하면서도 그것을 자랑하여 공노를 잃어 버린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마태 6, 2)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상기하자. 어떤 때에는 우리가 실제로 행한 것보다 더 크게 과장하여 선전한다. 그렇게 되면 이웃이나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자존심이나 명예를 사랑 한 것이 되고 만다.
또 어떤 때에는 「내가 그에게 베푼만큼 그가 내게 갚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감사할 줄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생각하면서 섭섭해 한다. 그러나 참된 애덕은 보상 뿐만아니라 감사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누구에게 베풀 때에 하느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했다면, 그 인간의 무례한 태도에 대하여 그다지 상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께 드렸다고 생각하면 나의 사소한 선행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내게 감사하셔야 된다고 감히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하여 즉 애긍시사에 대한 보상이나 감사를 기대하지 말라는 교훈을 루가 복음의 일화가 전해 준다. 『예수께서 당신을 초대한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놓고 사람들을 초대할 때에 친구나 친척이나 잘사는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말라. 그러면 너도 그들의 초대를 받아서 네가 베풀어 준 것을 도로 받게 될 것이다』 (루가 14, 12).
『그러므로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오히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그러면 너는 행복하다. 그들은 갚지 못할 터이지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 주실 것이다』(루가 14, 13~14).
이 일화는 무조건 친지 사이의 초대를 금하는 것이 아니고 애덕을 베푸려면 현세적 보상이나 답례를 기대하지 말고 오직 하느님의 보상을 기대하라는 말씀이다. 위에 인용한 성경 말씀들은 한결같이 진정한 애덕의 동기는 사람이나 현세적 사물에 있지 않고 하느님을 동기로 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또 이것을 강조하여 사도 바울로는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속에 뛰어 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고린 13, 3)라고 하였는데, 바울로가 말하는 사랑은 타인에 대한 동정심이나 박애 정신이 아니고 하느님 때문에 인간을 사랑하는 애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성숙한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사랑은 인간적인 동기에 의한 이러저러한 사랑이 아니고 하느님을 동기(動機)로 하는 그리스도교적 애덕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대신덕 (對神德)에 대한 고찰을 마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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