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30일부터 12월 2일까지 서울과 평양에서는 각각 100명씩의 이산 가족들이 반세기만의 감격적인 가족 상봉을 하였다. 이런 만남이 가능하게 된 것은 지난 6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이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이들은 남북의 두 정상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러나 두 정상의 뒷면에 가려진 많은 이들의 역할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즉, 남북의 두 정상이 만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한 이들, 정상의 의지를 담아 남북 공동선언문을 기초한 이들, 그리고 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해 음지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의 역할이 그것이리라!
실제로 이러한 사람들의 협력이 없었다면 회담자체도 민족의 50년 냉전의 장벽 붕괴도 부분적이긴 하지만 한 맺힌 이산가족의 만남도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도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남북관계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나 여겨진다. 어느 사회이든 그 사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의 올바른 선택과 그 선택을 뒷받침 해줄 협력자들의 도움이 있을 때 가능하리라.
그리고 겉으로 드러남 뿐만 아니라 드러남 뒤에 숨겨지고 감추어진 역할, 마치 드라마에 비유해 이야기한다면 주연을 빛내기 위한 조연들의 역할도 인간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오늘 우리는 루가복음을 통해 「대림절의 사람」세례자 요한을 만나게 된다.
이분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로 탄생하신 분으로 공적 활동 기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당시 민중들에게 끼친 영향은 대단하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일찌기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요한 11, 11)라고 이야기 하셨을 정도고, 오늘날까지도 요한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만 보아서도 그 영향력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분이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세례자 요한의 사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는 개념을 알 필요가 있다. 원래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는 이사야서 40, 3절에서 나오는 말인데 그의 임무는 당시 바빌론 유배 생활 중에 있는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느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 성서에서 시적으로 표현하는 골짜기와 산과 언덕을 없애고 큰 길을 내는 것과,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만나고, 백성들이 하느님과 하느님이 선물로 주실 해방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길과 여건을 만드것이 그의 임무였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게 하기 위해 활동하는 세례자 요한에게 이러한 호칭을 적용 시키는 것도 세례자 요한이 바로 하느님의 구원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없애고 하느님의 구원을 백성에게 드러낼 준비자로 소개하기 위함일 것이다.
다시 이야기하면 6절에 나오는 하느님의 구원은 바로 예수님을 뜻하기에(루가 2, 30) 세례자 요한의 역할은 예수님의 공적 활동을 준비하고, 백성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회개와 세례를 선포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백성들을 준비 시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세례자 요한에게 적용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는 표현은 때로는 멋있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가 수행해야 할 일들은 결코 멋있는 일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역할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철저히 음지에서 일한 이들의 역할 일 수 있고,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위해 자신을 철저히 비하 시켜야 하는 조연의 역할일 수도 있고 요한의 표현대로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요한 3, 30)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세례자 요한 -충분히 중심의 자리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던 분이고, 자신을 스승으로 따르는 일단의 제자들을 거느리셨던 분- 에게 있어서는 자신을 철저히 무로 돌려야 하는 그 같은 역할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명예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개인과 소집단의 이익보다는 민족과 전 인류의 선익에 시선을 줄 수 있는 대범함을 가지셨던 분이었기에 그 역을 자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한국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이야기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마디로 표현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지만 분명한 것은 바로 세례자 요한과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의 수가 적기 때문이 아닐까?
조연의 삶보다는 주연의 삶만을 탐내고 전 공동체와 민족의 선익보다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관계된 소수의 집단 이익만을 고집하고 하느님보다는 자신을 찾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대림절의 사람」요한의 삶이 그리워지는 시기이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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