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지내며 우리 삶의 보금자리이며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기본 요소인 가정의 중요성을 뒤돌아보며 가정의 성화를 위해 기도한다. 특히 오늘과 같이 가정이 위기에 처해 있는 현실에서 우리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모든 가정의 모범인 성가정의 교훈을 되새긴다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성가정 하면 뭔가는 모르지만 막연하게 나마 거룩하고 평화롭고 행복이 넘치는 가정,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이 가득한 무지개 빛 가정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기에 성가정을 본받는다 라고 기도 할 때, 우리 마음의 한 부분은 우리가 가지지 못했지만 성가정이 지녔을 법한 행복이 우리 가정에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반적인 우리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가정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 가정은 우리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너무나 상이한 가정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성가정은 우리가 기대했던 행복과 평화가 넘치는 무지개 빛의 가정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가정, 우리 가정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모든 불행의 요소를 두루 갖춘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가정은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한 가정이었다. 요셉의 직업은 장인이었는데, 이 말은 막일을 하던 사람들을 지칭할 때 사용하던 말이었다. 오늘날 인건비가 비싼 한국 땅에서도 일일 노동자들의 삶이 고단하다면 2000년 전 지도에도 잘 나타나지 않을 정도의 작은 도시 나자렛에서 막노동으로 삶을 살아갔을 성가정의 경제적 모습은 싶게 상상이 가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둘째로 이 가정은 부부간의 불신과 오해가 있는 가정이었다.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은 처녀가 정혼을 한 다음에도 동거생활을 하지 않고 약 1년간 친정에서 살게 된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하게 된 시기는 바로 이 1년간의 친정에서의 생활 중 즉, 첫 번째 결혼과 두 번째 결혼 사이에 아기를 갖게 된다. 바로 이 사건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는 많은 오해와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요셉은 남 몰래 파혼하기로 마음을 먹게 될 정도로 이 성가정에도 극복해야 할, 오늘날 우리 가정이 가지고 있는 불신과 갈등의 요소를 똑같이 가지고 있던 가정이었다.
세 번째로 이 가정은 자식의 불효가 있는 가정이었다. 오늘 복음에도 그 한면을 볼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열 두살 되던 해 과월절 때 예루살렘 성전에 순례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부모는 아들 예수를 잃어버리게 된다. 때문에 부노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 어렵게 성전에서 그 아들을 되찾게 된다. 그 때 부모의 애타는 마음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란 황당무계하기까지 하고 성질급한 한국 람이라면 한 대 두드려 맞았을 소리. 그리고 더하여 예수님의 공생활 시절, 예수님에 대한 부정적인 소식, 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하자면 술주정뱅이요 악령들린 사람, 죄인들하고 어울리는 상놈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들이 걱정되어 찾아간 어머니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형제들』이라는 너무나 매몰차고 어미의 가슴에 상처를 주기에 충분한 말씀.
네 번째로 이 가정은 고통이 있는 가정이었다. 인간에게 가장 많은 고통을 주고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은, 서양인들에게는 배우자의 죽음이고 동양인에게 있어서는 자식의 죽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성가정은 이 두가지 사건을 동시에 겪은 가정임. 남편을 일찍 여의었을 뿐만 아니라 외아들마저도 자신의 눈앞에서 처절히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던 가정이 바로 이 가정이었다.
바로 이러한 모든 불행의 요소를 가지고 있던 가정이 바로 성가정이었다. 그러면 무엇일까? 성가정의 이러한 모습이 분명 우리가 본받고자 하는 진면목은 아닐진데 성가정을 통해 우리가 본받아야할 교훈과 모범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아마도 성가정안에 있었던 하느님의 자리(활동공간) 때문이리라.
분명 성가정은 모든 불행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가정은 「하느님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 」, 중요한 선택과 결단의 순간 「하느님의 뜻이 함께 할 수 있는 자리와 여백」이라는 참으로 우리 신앙인들이 두고두고 생각해야만 할 소중한 보물을 간직하고 있었던 가정이었다는 것이다.
고통의 순간에도, 이해 못할 아들의 행동과 불효의 순간에도, 이해못할 임신으로 이혼의 위기에 처했을 때도 이 가정을 이끌어 간 것은 인간적 판단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그 가정을 이끌어 가는 중심축이었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이 활동할 수 있는 자리와 공간을 마련해 드렸다는 것이 성가정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일 것이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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