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느님은 가장 완전하시고 온전히 선하시며 피조물과는 온전히 다른 타자(他者)이시다. 인간이 하느님에게 어떤 속성을 덧붙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성질들을 초월하여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2). 성서의 창조론을 인정한 그는 좀 색다른 견해를 편다. 창조는 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영원한 물질에서 생긴다. 그런데 물질은 악한 것으로서 인간에게 죄악의 원인을 제공한다. 여기서 그의 윤리학이 등장한다. 그것은 그가 할라카의 관심으로 성서에서 끌어낸 삶에 필요한 율법과 그리스 사상의 혼합이라고 보여진다. 인간은 정화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영혼의 무덤인 육체로부터 정화되어야 하며 인간에게 있는 격정들은 모두 제거되어야 하므로 수행이 필요하다. (3). 그의 로고스설은 하느님과 세계 사이에 어떤 중개자가 있다는 데 있다. 그 중개자는 랍비들이 메므라흐(Memrah)와 천사들에 대한 추리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메므라흐는 하느님의 특별한 말씀, 심부름꾼, 대표자, 중개자, 또는 천사이기도 하다. 또한 로고스는 이데아들 중의 이데아이며 하느님의 지혜와 일치한다. 세계는 이 로고스에 의해 창조되며 이는 세계에 생명을 부여하는 힘이고 세계에 위안을 주며 하느님 앞에서 세계를 대표한다.
이런 이론을 전개한 그는 인간이 이 지상에서 할 일은 영혼의 무덤인 육체에서 벗어나 영원한 지혜인 로고스를 통해 하느님과 일체 되는 길을 걷는 것이다. 그것은 육체를 벗어난 탈혼 속에서 하느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느님의 프뉴마, 즉 영혼에 의해 이런 일치에까지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순수한 하늘의 지혜의 길이다. 그는 성서에 몰두하여 그리스적 사고방식에 바탕을 두고 동족을 신앙에로 끌어들이려는 열성으로 불타있던 인물이었다.
4. 하느님 아드님이 사람 되심
그리스도교 영성은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그분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영성 역사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영성생활의 역사이다. 모든 수행자들과 성인들 그리고 기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을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잘 알아야하며 그분의 가르침에 정통해야 한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이 세상의 구원자로 오시기로 예언된 분이었으며 때가 무르익었을 때에 이 세상에 오셨다. 좬때가 찼을 때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을 구원해 내시고 또 우리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셨습니다좭(갈라 4, 4-5).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분은 인생의 올바른 길잡이며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분이 보여주고 제시하신 길을 성실히 걸어감으로써 우리는 영성의 꽃을 피울 수 있다.
1) 역사의 예수
그분은 지극히 겸손한 방법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팡파르를 울리고 좬물렀거라좭를 외치는 근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집도 절도 없는 비천한 집의 한 아이로 오셨다. 태어날 방도 없어 마굿간에서 비천하게 태어나셨지만 인류의 구원자이시다. 한 때 그분의 역사성을 부인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떠들썩한 사건들과 유명한 인물들에 관심이 많았던 세속의 역사가들이 지나가는 투로 슬쩍 언급한 것들이 그분의 지상 역사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줄이야.
여기서는 예수님의 역사성을 논하지는 않겠다. 다만 비그리스도계 여러 문헌(요세푸스 플라비우스의 유대고서, 타키투스의 연대기, 쁠리니우스 2세의 서간, 수에또니우스가 쓴 「황제들의 생애」에서 다룬 「끌라디우스의 생애」, 바빌론 탈무드들을 통해서 그분의 역사성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현 교황님의 사목 서간 「제삼천년기」 5항도 참고할 수 있다.
한편 그리스도교계 문헌들인 성서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역사성과 그분의 정체성을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참 하느님이시고 참 인간이시며 역사의 「알파요 오메가」(묵시 1,821,6), 「처음과 마지막」(묵시 21,6)이신 그분은 구약성서를 통해 예언된 분으로서 헤로데 대왕 생존시에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베틀레헴 촌락에서 탄생하셨다(마태 2,1루가 1,52,4). 약 30년간 나자렛에서 숨은 생활을 하셨는데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해서는 성서가 침묵을 지키고 있으나 양부 요셉이 목수였던 것으로 보아(마태 13,55) 그 당시엔 아버지의 직업을 아들이 그대로 물려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목수나 건축 기능공으로 활동하셨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30)라는 말씀에서 그런 인상을 풍기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의 가족 사항에 대해서는 어머니 마리아, 양아버지 요셉 그리고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 형제들과 누이동생들이 있었다(마르 6,3). 가톨릭 신자들은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이심을 믿기 때문에 형제 자매들을 친동기로 보지 않고 가까운 친척들로 인정한다. 한편 개신교에서는 그들을 친동기로 보며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예수님을 낳을 때까지만 동정이셨지만 그 후에는 요셉과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였으므로 많은 자녀들을 두었다는 주장이나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분의 교육 수준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분은 나자렛에서 철저하게 숨은 생활을 하신 것이다. 혹자는 예수님이 인도에 가셔서 수행을 배웠다고도 하고 쿰란 공동체에서 수도생활을 했으리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모두 믿을 수 없는 가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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