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느님의 아드님이 사람 되심
(1) 하느님의 나라
이는 예수께서 설교하신 한결같은 주제로서 특히 산상설교(마태 5-7장), 평지에서 하신 설교(루가 6,17-49)와 여러 비유 말씀에서 발견된다. 하느님의 나라는 구약성서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사상으로서 하느님의 통치 또는 지배와 주권을 의미한다. 창조주 하느님은 우주의 통치자로서 대자연과 인류의 역사, 특히 선택받은 백성 이스라엘을 통치하셨다. 이는 영토를 가리키는 의미가 아니고 하느님이 이 지상에 통치자로서 군림하는 것 또는 그분의 의지와 주권 실현을 의미한다. 성서에서는 『아버지의 나라』(마태 13,43), 『당신의 나라』(마태 6,10), 예수님을 메시아로 본 후에 사용된 『그리스도의 나라』(1고린 69 갈라 5,21)로 표현되어 있다. 세상은 창조주 하느님의 지배하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원죄이래 하느님 아닌 다른 세력이나 사상의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에 하느님의 지배하심이 드러나는 그 때는 어떤 능력이나 악의 세력도 힘을 쓰지 못하고 굴복하게 되며 사랑과 의로우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나라가 임박했음을 회개 촉구의 설교 동기로 삼았다(마태 3,2). 예수님의 설교 역시 하느님의 나라가 곧 도래한다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마르 1,14). 마태오 복음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라고 할만큼 예수님 설교의 중심이 되었다. (4,17·23 5,3). 13장에서 그분은 여러 가지 비유로 하늘 나라에 대하여 설교하셨다. 하느님 나라의 선포 특징은 곧 그 나라의 임박과 그 곳에 들어가 그것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한다』(마태 7,21). 또한 예수님은 그 때와 「일어날 징조」또는 「시간」 등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시며 묵시문학적 표현을 사용하신다(마르 13장). 그러나 루가 사가에 의하면 묵시문학적 표현과는 달리 현재적이고 내재적인 표현을 하신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17,20). 이를 두고 여러 학자들은 예수님의 본 의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설을 내세웠다. 종합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미래적, 가시적, 묵시문학적 현상이거나 영적 내지 정신적 불가시적인 것을 강조한 것이거나 아니면 두 견해를 종합하여 하느님의 나라는 「벌써」(jam)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nondum) 견해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업적과 인품으로 보아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하였으므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회개와 믿음이 절대적이다.
(2) 회개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그렇다. 「시간의 충만함」(갈라 4,4)은 만민이 구원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 의지가 구세주이신 예수님 안에서 드러난 것을 말한다. 그분의 강생, 30여년 나자렛의 숨은 생활, 그리고 때가 되어 사람들 앞에 나타나시고 활동하심은 모두 인간의 구원을 위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행위이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보답하기 위해서는 회개와 믿음이 필수적이다. 회개란 악의 생활에서 발길을 돌려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방향전환. 그것은 단적으로 악행을 중단하고 선을 행하는 것으로 드러나야 한다(마태 9,13루가 3,11). 예수님이 원하시는 회개란 전인적인 회심이다. 하느님의 지배를 받지 않고 그분께 등을 돌린 모든 것, 즉 세속적이고 악마의 세력 하에 살아온 삶에서 하느님께로 발길을 돌려 그분의 아드님이 선포하신 그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 이는 죄의 상태에서 은총의 상태로 변화되는 것, 즉 하느님 안에서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맨 처음 부름 받은 제자들이다(마르 1,16-20). 제자들의 소명과 추종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늘 나라와 회개를 받아들여 은총의 삶을 사는 사람들로 드러난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회개와 믿음이 필수적임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다. 요한 복음에 의하면 그 다음 조건은 세례이다. 즉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여기에 대하여 사도 성 바오로는 보다 확실히 언급하신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느님의 성령으로 깨끗이 씻겨지고 거룩하여졌으며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1고린 6,11). 그러므로 회개와 기쁜 소식을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그분의 사랑을 받으며 살게 되는 것이다.
(3)가난한 이들의 복음
예수님이 선포하신 기쁜 소식은 구원을 알리는 생명의 말씀이다. 그 말씀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구약의 아나빔과 같은 사람들이다. 루가와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이 설교는 예언자들을 거쳐 세례자 요한에 이르기까지 유다 영성이 기술하고 있는 놀라운 포물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스라엘의 신심에서 「가난한 사람」이란 충실한 사람과 같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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