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원시교회와 사도들의 활동
④ 하느님의 자녀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소상하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그 범위를 확대시켜 당신을 믿고 추종하는 사람들도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셨다.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간의 앎은 사랑의 일치이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은 상호간의 앎에 있어서는 완전하다.
이를 신학에서는 삼위일체의 대내적인 관계 또는 교류라고 하는데, 우리 신앙인들도 사랑 안에서 하느님을 알 때 그분과 일치될 수 있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완전히 사랑하면 서로 완전히 알 게 되듯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그분과의 일치를 통하여 그분을 점점 더 알게 된다. 예수님은 고별사에서 신앙인들이 하느님과 맺는 사랑의 관계를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 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17, 26). 이 말씀은 좀 더 구체적으로 내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서 사랑을 받을 것이다. 나도 또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를 나타내 보이겠다(14, 21). 위의 말씀은 일종의 신비사상과 연관이 있다. 나타내 보인다는 표현은 대단히 의미있는 표현이다.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아는 영혼은 복되다. 그 앎은 너무나 좋으신 하느님을 바라봄이라는 관상적(觀想的) 상태나 그 상태가 너무 좋아 세상에 내려갈 생각은 하지 않고 이곳에 장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에게,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아에게라고 소리 지른 사도 성 베드로의 심정이나 예수의 성녀 데레사가 기도의 여섯 단계에서 맛 본 그 탈혼적 상태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영혼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시고 여러 가지 신비를 알게 하신 다. 사실 영성신학에서는 사도 성 요한을 신비가로 본다. 그의 표현에서 신비적인 의미를 풍기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며(참조 14, 2317, 20~2315, 111요한 3, 24, 16) 다른 어느 제자들보다도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분이라(참조 13, 2319, 2621, 721, 20) 그분을 사랑으로 알고 있었 다.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아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성인이신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사랑으 로 하느님을 아는 사람을 두고 사랑은 뛴다. 만난다. 그리고 기뻐한다라고 하였다. 하느님을 만나려는 사람은 걸어가지 않고 뛰어간다. 사도 성 요한이 여기에 속한다. 그는 주님의 무덤을 향 하여 힘껏 달렸고 부활하신 주님의 발현도 제일 먼저 목격하였다(20, 421, 7).
왜냐하면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에 주님의 무덤을 향하여 뛰어갔고 그분을 보는 눈이 다른 제자들보다 더 열려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제일 먼저 알아보지 않았을까?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자녀들도 이론보다는 마음으로 그분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 은 열매를 맺는다.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 는 것이다(15,1~17)라는 말씀을 깨닫게 될 것이다.
⑤ 믿음
믿음과 불신은 상호 대립된다. 믿음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이다(6,44-45참조. 8,43-4512,39-41). 예수님은 징표들을 통하여 사람들이 믿게 하셨으나 마음이 굳어져서 죄의 상태에 있던 사람들은 끝까지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지 않았다. 그들은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로서(참조. 9, 39~41) 근본적으로 예수님과 대립하고 있었다. 그들 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8, 39~47). 지도계급의 유다인들과 심지어 는 많은 군중들도 그분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불신자들 중에는 그분의 제자들(6,60~65)과 심지 어는 그분의 형제들도 끼어 있었다(7,5). 그러나 베드로는 신앙을 고백하였다: 주님께서 영원 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 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6, 68~69). 믿음은 지식(앎)으로 이끌고 예수님이 하느님 아버지의 파견을 받아 이 세상에 구원자로 오셨음을 믿고 받아들이게 하였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⑥ 예정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에 파견되신 아드님은 영원으로부터 아버지와 절친한 사이이시다. 즉 아버 지는 영원으로부터 아들을 아시고 그를 사랑하시며, 또한 그분은 영원으로부터 당신을 믿는 이 들을 아들에게 주신다. 요한 복음에서 준다는 동사는 예수님에게 위임된 인간의 구원 에 관련된 모든 것과 연관하여 여러 번 등장한다. 다시 말해서, 구원과 연관된 것은 모두 아버지에 의해 아드님에게 주어진 것이다(3, 3513, 3).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기시는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올 것이며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결코 외 면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맡기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6, 37~38). 예정은 신비이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님께 갈 수 없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6,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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