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원시교회와 사도들의 활동
(3) 묵시록
(11) 묵시록의 결론
결론은 22장 6절에 잘 나와 있다. 천사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확실하고 참된 말씀이다. 예언자들에게 영감을 주시는 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곧 이루어져야 할 일들을 미리 보여 주시려고 당신의 천사를 보내셨다』
사도 성 요한은 개인적으로 듣고 본 것들을 기록하였다. 그는 하느님의 사자로서 권위 있게 다음의 두 가지를 분명히 전하고 있다.
첫째로 묵시록은 장차 일어날 일들을 확실하고 권위 있게 언급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조작해서 만든 책이 아니다. 우주의 통치자는 하느님이심을 이 책은 분명히 전하고 있다.
둘째로 「마지막 시간」은 꼭 오고야 만다는 가르침이다. 독자에 따라서 임박했거나 멀지 않은 장래에 일어날 것이다.
『그 때가 가까왔으니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봉하지 말아라』 (22, 10). 그 날과 그 시간의 정확한 시간과 날은 예언되지 않았으나 마지막 순간이 온다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각자가 할 일은 분명하다. 어리석은 부자처럼 행동하지 말아야 하며(루가 12, 16~21),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2, 7).
그분은 급히 오실 것이다(22, 16. 20). 그러므로 인내를 다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며 환난이 오더라도 주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충실히 해야 한다(14, 12).
무엇보다도 생각과 말과 행위와 궐함으로 잘못한 모든 것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주님께로 돌아가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
6) 사도 성 야고보
신약성서 안에 특별히 영적인 훈계를 담고 있는 문헌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사도 성 야고보의 서간이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큰 역할을 한 알페오의 아들이며 주님의 형제로 불린 그 야고보이다.
이 서간은 너무나 유다교적이며 윤리적이다. 그래서인지 마르틴 루터는 이 서간을 『지푸라기 서간』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그의 영향을 받은 일부 성서 주석가들은 이를 사도 성 바오로와 반대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였다.
그 이유는 특히 두 사도가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있는데, 한 편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선호하는 인상을 주고 있고(로마 4장) 다른 한 편은 선행을 통한 구원을 선호하는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야고 4, 21~26).
그러나 야고보는 선행을 통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바오로와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야고보가 예루살렘의 목자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서간이 유다교-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신앙 지침이었음을 알 수 있다.
(1) 신앙과 선행
야고보 서간은 단적으로 말해서 윤리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우선 신앙에 바탕을 두고 신앙인에 어울리는 선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 사도의 가르침이다. 주님께서도 이를 분명히 하셨지만(참조. 마태 7, 15~23) 야고보 서간도 예외는 아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2, 14~26)
여기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고 본다.
믿음에 실제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 믿음은 헛되다. 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을 이론적으로만 정립하여 거기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하고 믿음이 실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그런 류의 믿음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신앙에 상응하는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시체와 같으므로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이 이상적이다. 지난 해 우리 가톨릭과 루터교의 일치에 400년 이상 장애물이 되어 왔던 의화논쟁이 해결되어 일치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는데, 그 핵심이 신앙과 선행의 논쟁이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함께 선행을 실천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신앙만으로(sola fide) 구원된다』는 루터교의 주장이 『의화는 신앙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선행은 참된 신앙의 핵심적인 표지이다』라고 절충된 것이다.
하느님 앞에 의롭게 되는 것은 분명히 신앙에 의해서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완전하신 하느님 앞에 모두 부족한 존재이고 어떤 면에서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은총의 도움으로 선행을 할 수 있고 해야한다. 그러므로 선행은 참된 신앙의 핵심적인 표지일 수밖에 없다.
야고보 사도는 선행의 구체적인 내용을 몇 가지 제시하는데, 악의 불씨인 혀를 함부로 놀리지 말고 세상을 친구로 삼지 말며 서로 헐뜯지 말고 탐욕을 버리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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