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원시교회와 사도들의 활동
6) 사도 성 야고보
2. 화를 내지 말라
『화를 내는 사람은 하느님의 정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1, 20). 화(분노)를 두 가지 면으로 볼 수 있다. 일차적으로 분노는 복수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나오는 무질서한 욕망을 말한다. 정당한 이유가 있어 정도에 맞게 화를 내는 것은 죄가 아니고 오히려 선행이 될 수도 있다. 주 예수님은 기도의 집인 성전을 더럽히던 상인들에게 화를 내셨다. 채찍으로 그들을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책상과 비둘기 파는 상인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그리고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마태 21, 12~13)하셨다. 이런 경우 화는 정당하고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이익이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화를 내거나 화풀이를 한다면 그런 자는 『하느님의 정의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복수할 동기로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언제나 사회를 이루어 더불어 살아간다. 사회 안에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싫거나 미워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화풀이를 하거나 나의 이익만을 앞세워 화를 내는 경우들은 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3. 복음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
기쁜 소식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제 얼굴의 생김새를 거울에다 비추어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 사람은 제 얼굴을 비추어 보고도 물러나서는 곧 제 모습을 잊어버리고 맙니다』(1, 24). 건성으로 말씀을 듣거나 그것을 성실하게 실행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 주님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하셨으나(마태 7, 26) 야고보 사도는 거울에 비추어 보는 사람과 같다고 한다. 기쁜 소식은 자유를 주는 완전한 법으로서 이를 지키는 사람은 축복을 받는다(1, 25).
복음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윤리적 가르침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혀를 억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는 것』은 원시교회가 권고한 사랑의 실천이었다. 고아는 부모를 여위어 몸 붙일 곳이 없는 아이로서 과부와 거류하는 나그네 등과 함께 세상으로부터 냉대 받기 쉬운 이들로서 어느 시대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과부들은 불우함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천대받기 쉬운 입장이므로 하느님께서는 과부의 옹호자이시고 그들을 정의와 사랑으로 대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주 예수님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고(마르 12, 40) 원시교회는 주로 기도와 자선사업을 위한 목적으로 과부단을 조직하였으나 초창기에는 가난 때문에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는 불쌍한 그들을 도와주도록 권고한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세속이 주는 여러 가지 유혹에 대항하라는 가르침이다. 야훼를 섬기는 이들이 실천한 첫째가는 신앙의 의무는 사랑의 실천과 깨끗한 삶이었다.
7) 교회 공동체의 양상들
(1) 종말론적 사고
원시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종말론적 사고에 젖어있었다. 즉 승천하신 주님께서 곧 재림하시리라는 기대 속에 살았던 것이다. 그것은 메시아의 출현으로 나타날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기대라는 특성을 지닌 유다이즘 지성의 특징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대로 전수된 것이었으니 그것은 종말론이라는 성서적 접근이었다. 종말론적 메시아 시대에 대한 기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분은 후대 유다교에서 기대하던 인물들, 특히 메시아와 다니엘서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사람의 아들과 동일한 인물로 간주되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두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첫째는 그분과 식사를 나누며 그분을 만나는 형태요, 두 번째는 그분의 추종자들에게 가해지던 박해와 세상의 온갖 불의와 죽음 등을 종식시킬 그분의 재림(parousia)에 대한 기대였다. 그것은 그리스도교 영성이 역사와 종말론 사이의 변증법으로서 경험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했으나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이 완성에 대한 기대와 열렬한 기도로 나타났다. 종말론적 사상이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충실한 제자들과 신도들에게 상급을 주실 그 『시간』을 깨어 기다리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여기서 나오는 영성은 그분을 위하여 증거하고 죽음(순교)까지도 감수하게 하였다.
그러면 아버지 하느님께서 고통받은 당신의 아드님을 부활시키사 영광스럽게 해주신 것처럼 그분께 충성을 다 바치는 이들에게도 그와 비슷한 상급이 주어질 것이리라는 기대였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재림은 지연되었다. 『주님은 언제 재림하실까? 그분은 어디에 계시는가? 그분이 오실 때까지 교회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라는 질문들이 제기되었다. 여기에 대한 영성적 해답은 다음의 양상들로 제시되었고 그리스도교 영성의 모습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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