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초기 교부 시대의 영성
6) 사막의 성 안토니오
성 요한의 말씀에 의하면, 그분 안에 있는 사람은 세상 안에 있는 사람보다 더 강한 자이다. 사람들은 그를 더 이상 유혹 할 수 없고 하느님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 그들을 인도하여 하느님께로 데리고 갈 위치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은수생활은 단순히 완전한 사랑을 효과적으로 얻는 방법으로 제시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은수생활은 안토니오로 하여금 자기 형제들의 운명에 무관심한 관상가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은수생활은 그를 다른 모든 이들 위에 영적인 아버지로 만들었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주님은 그를 통해서 그 자리에 모인 자들 중에 몸이 아파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을 치유 하셨고, 악령들린 사람들에게서는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안토니오는 은사를 받아 슬픔에 빠진 많은 사람들을 위로했고, 서로 적대시하는 사람들을 화해시켜 친구가 되게 하였으며, 이 세상에서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더 위에 놓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는 그들에게 앞으로 있을 좋은 일과 우리를 사로잡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였다. 하느님은 당신의 외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분이라는 (로마 8, 32) 사실을 마음에 새기게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은둔의 삶을 시작하도록 권유하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산 속에는 수도원들이 생겨났고,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되기로 작정한 수도자들에 의해 사막은 도시를 이루어 나갔다.
우리는 안토니오 성인의 생애에서 다시 한번 영적인 전쟁을 치른 후 정화되고 평정된 인간성이 진실하게 변화된 두 특징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성의 지배를 받고」(자의적으로 「논리적」이라는 의미) 「본성을 따르는 데 흔들림이 없었다」는 표현이다. 그 첫 번째 용어는 하느님의 말씀과 진실한 이성 사이에 동일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소유하시고 온전히 통치하시는 사람으로서, 이런 사람은 그분의 신적 원형에 동형이 된 이성이 실제로 회복된 상태의 사람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오직 허위의 출현이며 사물의 표면 너머로 가지 않는 속이는 지혜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그것은 성령께서 인간 본성이 하느님께서 그것이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셨을 때 자신을 다시 발견 하는 어떤 장애물도 받지 않고 침투하신 그 사람 안에 있다.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도 수도생활이 은총을 배제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오히려 정 반대이다. 완성을 이룬 수행자는 참으로 성숙된 인간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의 성숙을 하느님 안에서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이 상태는 비록 여기서 언급되지는 않지만 클레멘스와 무엇보다도 오리게네스가 사용한 「그노시스적인 사람」「완전한 자」「영적인 사람」과 확실히 일치한다. 우리는 다시 한번 영적인 부성이 성취되는 방법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논하는 수도자들 뿐 아니라 그 위대한 알렉산드리아의 영성 저술가들인 그들의 선임자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인 완성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두 가지가 안토니오와 더불어 그것을 드러낼 뿐 아니라 실감나게 하고 있으며 교부들의 전체 금언집 안에 다시 한번 발견되고 있는 것은 증거와 권고 그리고 조명의 말씀과 치유나 악의 지배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물리적 사물에 대한 권능이다. 영적인 사람이 갖춘 두 은사, 즉 말씀과 역동적인 힘(rema kai dynamis)은 복음서에서 군중들이 구세주를 만나 얻고 체험한 바로 그것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 안토니오의 생애는 의심 없이 많은 영웅의 여러 기담을 함께 모아 합쳐놓은 설교의 형태로 그 자체가 가르침이 되고 있는 것이다.
4) 참된 수도의 삶
우리는 안토니오 성인의 생애를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부분은 수도생활을 오직 유일한 참된 생활로 보고 이를 칭찬하는 것이다.
수도자는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포기해야만 하는 것을 단지 포기해야 한다는 심오한 관찰을 발견하게 된다. 수도자가 자유스럽게 포기하면 맺혀지는 열매는 무수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수도생활은 하느님 현존 안에 전적으로 추구하는 삶 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악령들과 그들의 환상들이 차지하는 부분이 있다. 이것들에 굴복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그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악령들과 그 환상들이 숨어서 인간에게 너무나 강렬하게 권세를 부리지만 그것들이 수행자에 의해서 스스로 정체를 밝히게 되면 그 결과로 그것들은 신앙의 힘에 의해 파괴되고 만다. 이 마지막 주제들은 영의 식별을 위한 규범이 된다.
성령과 이분을 섬기는 천사들은 평화를 주며 영혼에게 영적 열망을 여는 적극적인 평화를 준다. 반대로 악령은 영혼에게 혼란과 실망을 주고 모든 것에 맛을 잃게 한다.
무엇보다도 악령은 자기가 주선하는 환영에 우리를 밀착시키게 하는 것처럼 보이나 천상적 환영들은 언제나 이 지상에서 찾을 수 없는 하느님을 찾도록 우리를 앞으로 재촉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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