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갈 데 없는 행려인들을 예수님으로 대접하며 어느새 행려인들의 사랑방이 된 보금자리가 있다. 12월 28일로 설립 10주년을 맞은 하상 바오로의 집(대표=유근옥 수녀)은 이름 그대로 어려움을 특별한 은총으로 받아들인 성인의 길을 이 시대에 다져온 하느님의 집이다.
혹독한 겨울의 쓰라림과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행려자의 동사 (凍死)를 지켜보아야 했던 사랑의 눈물이 「하상 바오로의 집」이 있게 한 씨앗이었다. 하상 바오로의 집은 버려지는 야채를 주워 파는 노인들, 야채더미에 체온을 의지하며 겨울을 나는 행려인들, 이들 가운데서 심심찮게 나타나는 동사자들을 지켜 보던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의 신자들상인이 마음을 모아 이룩했다.
하상 바오로의 집이 생기면서 도둑과 범죄자의 은신처가 될 것이라는 주위 상인들의 염려는 사랑으로 녹아버린 지 오래다. 오히려 몰래 나눔의 대열에 동참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겨울이면 생기던 동사자가 사라진 것도 이 집이 만들어낸 조금만 기적인 셈.
지금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수녀회에서 2명의 수녀가 파견돼 봉사하고 있다. 10년전 웬만한 중산층 집 한채 크기인 39평으로 시작한 하상 바오로의 집이 이어온 사랑의 걸음은 몇 가지 수치로도 단박에 드러난다.
연인원 40만명이 이 집으로 인해 생명을 잇고 1만8000여명이 상처를 치유받은 역사는 사랑이 아니었으면 이미 중단됐을 지도 모를 길이었다. 한달이면 20가마가 족히 넘게 들어가는 쌀이 떨어지지 않고 이어져 온 것만도 이 집에 쏟아지는 사랑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초창기부터 자신들의 살림살이에 연연치 않고 매달 꼬박꼬박 100만원씩을 보태온 가락동본당을 필두로 오금동본당, 10지구 공동체 등 인근의 이웃들을 비롯해 수년간 다달이 쌀 15가마를 보내오는 익명의 은인 등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넘쳐난 곳이 하상 바오로의 집이었다.
이러한 사랑의 역사에 감사하며 하상 바오로의 집은 12월 21일 오전 11시 서울 송파구 가락동 현지에서 후원자 등 200여명이 함께한 가운데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소외되는 이들이 사라지는 그날을 기원 했다.
이날 기념미사를 집전한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 10년은 노숙자로 나서 사형수로 가신 예수님을 본받아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와 하나가 되어온 길이었다』고 말하고 『마음으로부터 예수님을 닮을 때 주님을 더 잘 모실 수 있다』면서 가난한 이들을 형제로 감싸 안는 봉사자들의 삶을 격려하기도 했다.
설립 초기 설립을 반대하던 상인들의 억센 기운을 꺾는데 힘들 었던 생생한 기억을 지니고 있는 하상 바오로의 집 운영위원회 정옥기(안드레아) 회장은 『행려인들과 함께 한다』며 『설립 초기 하루 60∼70명이 찾던 것이 요즘에는 400명 가까운 이들이 찾고 있어 여전히 필요한 사랑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느님의 왼손이 일으키는 기적, 오늘도 하상 바오로의 집에서는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채워 주시니까요』 유근옥 수녀의 담담한 한마디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 자라고 있는 희망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문의=하상 바오로의 집 (02)402-1700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