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나를 사랑하려면 나를 미워해야한다. 참으로 나를 높이려면 나를 낮추어야 한다. 참으로 나를 부유하게 하려면 나를 비워야 한다. 참으로 나를 기쁘게 하려면 나를 괴롭혀야 한다. 참으로 나를 살리려면 나를 버리고 죽어야 한다.
우리 안에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나」가 서로 대립여 싸운다. 하나는 자기의 욕망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영적인 나」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뜻을 버리고 자기의 욕망을 따르려는 「육적인 나」이다. 「영적인 나」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보고 듣고 알고 맛보고 행하고자 한다. 「영적인 나」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느님께 기쁨과 만족을 드리겠다는 소원만을 지닌다. 그리고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만 인생을 살고자 한다. 반면에 「이기적인 나」는 자기의 욕망이 요구하는 것만을 보고 듣고 알고 맛보고 행하고자 한다. 하느님의 뜻과 사람의 욕망은 서로 상반되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 욕망을 따르면 하 느님의 뜻을 거역하게 되고 반대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면 자기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 『육체의 욕정을 채우려 하지말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 가십시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정을 거스릅니다』(갈라디아 5, 16~17)
「육적인 나」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 하고 자기의 교만과 탐욕과 육욕만을 만족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을 악하게 타락시킨다. 그러 므로써 육적인 나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떠나서 자기 자신과 피조물에게만 집착하게 만든다. 그래서 자기의 명예를 더 키우고 자기의 소유를 더 불리고 자기의 쾌락을 더 늘리는 것이 「육적인 나」의 유일한 소망이 된다.
우리의 인생은 「영적인 나」와 「육적인 나」사이의 투쟁이다. 이 투쟁의 결과에 따라 사람은 죄인이 되기도 하고 성인이 되기도한다. 「영적인 나가」 「육적인 나」를 이기고 승리하면 사람은 성인이 되고 「영적인 나」가 「육적인 나」에게 패배당하면 사람은 죄인이 된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완전 성덕에 이르기 위해서 따라야 할 유일하고 완전한 모범이시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길을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오 16, 24) 사람이 자기를 버릴 때 버림받는 것도 「나」이고 버리는 것도 「나」이다. 버림받는 나는 「육적인 나」이고 버리는 나는 「영적인 나」이다. 「영적인 나」가 「육적인 나」를 완전히 버림으로써 「육적인 나」가 완전히 죽게될 때 그 때 비로소 사람은 완전한 사랑에 이르므로써 성덕의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사람에게 「영적인 나」와 「육적인 나」사이의 투쟁은 영원한 운명이 걸린 가장 중요한 싸움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싸움은 하느님의 도움없이 혼자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힘겹고 지루한 싸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기도이다. 기도는 영혼의 휴식이다.
일에 지친 피로한 육체가 휴식으로 다시 힘을 회복해야 하듯이, 「육적인 나」가 죽기 위해서 필요한 유혹과 시련과 역경과의 투쟁으로 피로해진 영혼도 기도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새로운 힘을 얻어내지 않므면 기진해서 쓰러지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일상의 업무 에서 벗어나고 세상의 소란한 소음을 피해서 침묵과 고독 속에 홀로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도는 사람의 정신과 마음이 무한한 빛과 사랑의 바다이신 하느님께 잠겨 드는 것이다.
이 때 사람의 정신은 하느님의 빛으로 밝혀지고 사람의 마음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뜨거워진다. 그리고 사람은 하느님의 빛 속에서 하느님의 완전하심과 자기자신의 비천함 그리고 피조물의 무가치 함을 더 밝게 보게 된다.
그러므로써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더 열렬해지고 반면에 피조물과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는 더 멀리 이탈하게 된다. 따라서 사람이 기도라는 빛과 사랑의 바다에 잠기게 되면 자기를 더 완전히 버리고 비우고 낮추게 된다.
이렇게해서 「육적인 나」는 더 완전히 죽게돼고 그럴수록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은 더 강해지고 완전해진다. 그래서 하느님의 빛으로 밝혀진 영혼은 다른 사람의 허물과 결점을 더 잘 보게 되지만 그 때문에 멸시와 반감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너그럽게 이해하고 동정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교만에 빠지지않고 단지 그런 허물과 결점에서 지켜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뿐이다. 기도는 사랑의 영혼이 하느님의 무한한 빛과 사랑의 심연속에 잠겨드는 것이고 거기서 하느님의 빛과 사랑을 길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가 자신을 더 완전히 버림으로써 더 완전한 사랑을 지니게 하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죽은 기도이다.
오늘 복음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굶주린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먹고 또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치유시켜 주신다고, 예수님을 공격하는 대목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비록 안식일을 지키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지만 사랑이 없는 기도였기에 이사람들의 기도는 죽은 기도였다. 굶주린 사람과 병든 사람을 동정할 줄 모르는 냉혹한 마음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행동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알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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