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성숙이란 인간의 복음화이다.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에페 4,13)이다. 그리스도인 성숙은 곧 인간 각자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능력과 카리스마에 따라 복음 안에서 그분의 뜻대로 자신을 충만히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토마스 모어는 전인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었다.평신도의 영성은 세상 안에서 세상을 성화하며 세상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삶이다.
그러나 그 안에 살면서 그에 매이지 아니하고 은총 안에서 성화되는 자 유로운 삶이다. 그렇게 세상 안에서 완성의 길을 걷는 평신도의 영성을 모어는 모범적으로 살았다.
1) 전인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
은총이 인간 안에 작용하기 위해선 그 본성을 전제로 요구하듯이 그리스도인 성숙은 은총이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응답적 기본 바탕으로 인간 성숙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인간적 삶과 별개의 것이기 보다 차라리 충만한 인간의 삶 자체이므로 인간 성숙은 그리스도 인 성숙의 전제 내지 병행 조건이다.
그러므로 성숙한 인간일 수 없을 때 성숙한 그리스도인일 수 없는 것이다.토마스 모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기 전에 혹은 동시에 성숙한 인간이었다 모어는 어려서부터 모든 예의 범절을 배워 익히며 언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라틴어는 물론 희랍어에 능통했으며 영어 산문에 있어서 대가였다. 그는 위대한 인문주의 학자였으며 외교관, 법률가였고 웅변가였다.
그는 또한 영국 뿐 아니라 서구 전역에 걸쳐 당대의 유명한 석학들과 두터운 친분을 맺으며 배움과 우정을 나누었다. 특히 스페인의 비베스, 프랑스의 뷔데, 네델란드의 에라스무스와 친숙했다.
그가 쓴 리처드 3세 전은 세익스피어에 큰 영향 을 미쳤고 현대 영국 사기(史記)의 시원이기도 하다. 또 그가 저술한 유토피아는 후대에 무수한 이상국론들이 그것을 모방할 만큼 권위 있는 고전이 되었으며, 16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치론서이다.
한편 그는 확고한 결단성과 대쪽같은 정의감 그리고 놀라운 용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매우 겸손하고 다정다감하여 모든 이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언제나 남을 도와주기를 당연한 일로 알았다.
억울하고 불우한 사람들을 인정 깊고 따뜻한 말로 위로해 주곤 했다. 그래서 그는 곤경에 빠진 이들의 옹호자라 불렸다. 위엄과 온화와 청아의 조화가 그의 품성이라고 당대의 여론은 칭송하였다. 모어는 또한 유모어로도 유명하였다.
그는 일상 에서 뿐 아니라 단두대 앞에서까지 유모어의 여유를 잃지 않았다. 단두대 앞에 꿇어앉은 채 모탕 곁으로 그의 수염을 쓸어 내리며 남긴 마지막 유모어는 잘 알려져 있다.
'수염은 모반 대역을 하지 않았으니 짤려서는 안 되지'
모어가 서거했다는 비보를 받고 에라스무스는 이렇게 썼다.
토마스 모어, 영국의 수상, 그의 영혼은 눈보다 희었고 그의 천재성은 위인을 많이 낳은 영국 에서도 전무 후무 할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의 찰스 5세 황제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표현하였다. 나는 그렇게 훌륭한 협력자를 잃는 것보다 차라리 내 영토 중에 가장 아끼는 도시를 잃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2)평신도의 영성의 모델
모어는 젊은 시절 한 때 프란치스코회 평수사가 될 생각을 했었다. 그는 세속을 떠나 수도 생활을 하는 것이 속화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봉헌하며 성화 될 수 있는 길일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심사 숙고 끝에 자신은 수도생활을 위해 세속을 떠날 소명을 받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복음 정신에 따르는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그에게 소중했던 가족이나 재산도 지위나 법질서도 자신의 마음을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두는 데 방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으로 살았다.
그는 가정과 세상사 그리고 일상 에서 만나는 이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언제나 따를 태도를 가지고 살았다. 그는 아주 뒷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하게 될 평신도의 영성을 이미 모범적으로 살았던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각기 고유한 생활 상태와 모든 조건 속에서 완전 한 성인의 길(聖性)에 나아갈 수 있음을 성서에 근거하여 천명하였다(교회헌장 5장 참조).
성성(완덕)에 필요한 조건은 모든 이에게 동일한 것이 아니며 어느 사람에게 최선의 것이 다른 이에게 최선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이해해 온 대로 철저한 복음 권고덕을 수행하는 수도생활이 완덕에 나아가는 데 최선이라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완덕에 나아가기 위 해서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이가 성인이 되고 완덕에 나아가도록 원하시고 부르시는 하느님은 모두가 가정과 세상사 관리를 포기하고 떠나 수도자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평신도의 성성의 생활은 세상에 살도록 불린 성소 때문에 현세에 대한 관여와 지상생활의 참여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평신도의 영성은 세상 안에서 세상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삶이다.
결혼, 가정, 직업 및 사회 생활 안에서의 성성인 것이다. 따라 모어는 그 당시 이미 평신도로서 세상 안에서 완성의 길을 걸은 이이다. 그는 세상 안에서 살면서도 그것에 매어 있지 않았다.
그는 재물을 관리하고 활용하면서도 그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소유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 뿐 아니라 가족들이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했으며 절도 있게 재물을 관리하여 가난한 이들을 도왔고 양로원을 세워 불쌍한 노인들을 보살폈다.
그는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가족을 극진히 사랑하였지만 그것이 하느님 사랑에 장애가 되고 그분을 망각하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았으며 또한 그렇게 살았다.
그는 품위 있는 가정 분위기를 즐겼고 부인, 자녀들 그리고 많은 친지들과 함께 멋진 친교 및 사교생활을 하면서도 하느님과의 영적 친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새벽 두 시에 일어나 일곱 시까지 기도하고 공부하 였으며 매일 아침 미사에 참여하였다. 저녁엔 온 가족이 모여 가정 기도를 하였으며 식사 때는 가족 중의 하나가 성서 한 장을 주해와 함께 낭독했다.
토마스 모어는 법질서와 국가 제도를 존중 하였으나 그것 역시 그에게 최상의 가치는 아니었다. 그는 법과 제국 그리고 왕을 위하여 뛰어나게 헌신한 사람이었으나 이 모든 것에 대하여 내적으로 거리를 유지하고 초연한 자유를 간직하며 그의 마음은 주님이신 하느님께 향하여 있었다.
그는 높은 지위의 벼슬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소탈하고 겸허하며 검소하였다. 그는 모든 이의 인격을 존중하였으며 그가 무엇이든 잘못할 때에는 그하지 않았다. 그의 삶에 결정적 영성은 세상과 그 사물을 떠나거나 버리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거기에 매이거나 빠지지 않는 데 있었다.
그는 세상 속에서도 성령의 은총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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