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교회의 성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중국 국적을 갖고 활동하다가 1840년 고문을 받아 순교한 가브리엘 페르브와르(동문학,董文學)를 시성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시성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그 인원이 대규모이다. 더욱이 중국은 세계에서 몇 남지 않은 공산국가로 교황청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다각적인 물밑 접촉이 이뤄지면서도 교황의 주교 임명권 인정 등 몇 가지 풀리지 않는 문제로 인해 공식 외교관계 수립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중국 정부 당국이 가톨릭을 비롯해 정부의 공인을 받지 않은, 이른바 지하 종교단체 들에 대한 탄압을 멈추지 않고 있어 시성의 의미는 종교적일 뿐만 아니라 자의든 아니든 정치적인 의미 까지 띠고 있다.
이번 시성식에서 성인품에 오를 120명 중 일부는 17세기와 18세기에 중국에서 순교한 이들이며 나머지는 1900년 의화단 사건 때 순교한 이들이다. 특히 의화단 사건 때 순교자들은 매우 민감한 문제였으며 이로 인해 수없이 되풀이된 시성 청원에도 불구하고 수십년 동안 연기됐었다. 의화단은 중국에서 외세의 존재가 커져감에 따라 제국 주의의 침략에 대한 반감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화단은 선교사들을 살해하고 교회 방화 등 극단적 으로 서방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했다. 선교사들은 다른 모든 외국인들과 똑같은 존재로 취급됐고 중국 그리스도인 들은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해 십자가에 침을 뱉고 성직자와 수도자의 거취를 밀고하도록 위협받았다. 의화단 사건 당시 순교한 사람들의 수는 적어도 3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공식적인 역사에서 선교 시기를 「제국주의 침략기」로 간주했다. 시성이 늦어진 것은 바로 시성이 이른바 「제국주의」적인 교회에 대해 오히려 더 혹독한 박해를 가져오고 교황청과 중국의 외교관계 수립에 장애가 될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시성으로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한 선교사들에 대한 기록은 다시금 재검토되고 정당성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 된다. 상인들과는 달리 선교사들은 외딴 시골로 들어가 가난한 삶을 살면서 새로운 농법을 농민들에게 가르쳤고 질병을 퇴치했으며 처음으로 병원을 열었다. 상하이와 북경에 대학을 세웠으며 여학교, 대규모 고아원을 설립했고 남아선호사상에 의해 버려지던 여자아이들을 돌보았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시성은 시대적인 상황이 이들을 제국 주의의 선발대로 간주하게 한다 해도 이들의 선교 활동은 결국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중국 백성에 대한 사랑에 바탕을 둔 것임을 드러내게 된다.
이번 시성은 또 다른 측면에서 중국 교회의 역사를 수정 한다. 지난해 성탄절에 중국 애국회는 주교단 명의로 2000년 대희년을 맞는 교서를 발표했다. 이 교서는 주님의 강생에 대한 찬미 대신 애국회를 신격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중국 교회의 역사 안에서 선교사들의 시대는 「제국주의의 시대」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오직 공산주의의 통치 기간과 애국회의 활동 시기만을 교회사로 언급하고 있다. 이에 앞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98년 12월 8일 중국의 가톨릭 신자들을 향해 지난 수세기 동안 중국 복음화의 노력이 이뤄졌던데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중국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애국회의 이 교서는 교황의 이러한 내용을 반박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결국 시성은 중국인들이 애국회가 생겨나기 이전에 이미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참된 애국자였음을 보여주고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중국의 순교자들은 물론 중국에 속해 있지만 그들은 또한 보편교회의 순교자들이기도 하다. 중국의 아들 딸들을 명예로운 성인의 품위로 올리는 것은 중국 정부의 주장처럼 교황의 중국에 대한 「내정 간섭」이 아니다. 시성은 중국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좀더 폭넓게 확대해야 한다는 요청이기도 하다. 종교의 자유는 정부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천부적으로 타고난 권리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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