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현재의 요건과 임무(80-99항)(상)
이 장은 제6장과 더불어 회칙 '신앙과 이성'의 핵심을 이루는 대목으로 철학과 신학의 만남과 비교는 계시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현대의 철학과 신학이 진정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들과 해야 할 일들을 제시한다.
교황은 우선 현대 세계는 '의미의 위기' (81항)를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절대적 진리와는 상관없이 해답을 제시하고자 하는 이론들이 번창하고 인간의 경험에 대한 "자료와 사실들의 소용돌이"속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초월적 비전을 갖지 못한 채 날로 늘어가는 '지식의 분열' 현상에 휩싸여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과연 뜻있는 일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심'을 제기하며 회의론과 무관심 또는 허무주의에, 그리하여 모호한 사고와 내향성에 쉽게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교황은 여기서 하느님의 말씀이 철학에 부과하는 세가지 요건들을 제시한다.
첫째, 철학은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탐구하는 '지혜의 차원' (81항)을 되찾아야 한다. 이 차원은 인간의 기술적 능력이 무한히 확대되고 있는 오늘날 더욱 필요한 것이다.
"만일 이 기술이 단순히 실리적인 목적보다 숭고한 그 무엇을 지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비인간적인 것임이 드러나고 심지어 인류의 잠재적 파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81항)
둘째, 철학은 인간이 진리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밝혀야 한다.
셋째, 철학은 진리 탐구에 있어서 절대적이고 궁극적이며 근본적인 그 무엇에 도달하기 위해 경험적인 자료들을 초월할 수 있는 진정한 형이상학적 영역을 갖춰야 한다.
교황은 여기서 "현상에서 근본으로 나아갈 것" (83항)을 권고한다. "우리는 단지 경험에만 멈춰 서 있을 수 없다. 비록 경험이 인간의 본성과 영성을 드러낼 지라도, 사변적 사고는 영적인 핵심과 그것이 솟아 오르는 근원을 꿰뚫어야 한다" (83항)
교황은 여기서 사목자들은 사람들이 생활과 사고방식에서 궁극적 진리의 차원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 줄 '지혜의 임무' (85항)가 있음을 강조한다.
교황은 일부 현대 사조에 숨겨져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현대 철학과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발전된 철학이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특히 절충주의, 역사주의, 과학주의, 실용주의, 허무주의는 진리의 근본 요건에 대해 문을 닫아걸고 있어서 신앙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철학으로 이용될 수 없다고 밝힌다.
교황은 예컨대,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은 윤리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것이라는 과학주의적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윤리는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히는 한편, 허무주의는 인간성과 인간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고, 따라서 인간에게 진리를, 인간의 존엄성을 거부하는 바, 그렇게 되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환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진리와 자유는 함께 손잡고 가거나 비참히 함께 멸망한다" (90항)
교황은 여기서 "우리 시대를 특징지은 극심한 악의 체험"은 "역사를 이성의 의기양양한 진보로, 모든 행복과 자유의 원천으로 본 합리주의적 낙관론을 무너뜨렸고, 이제 금세기말 우리의 가장 커다란 위협의 하나는 절망하려는 유혹이다" (91항)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절망과 싸울 것을 권고한다.
세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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