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의 죽음을 바라본다. 가시관을 쓰시고 온 몸이 상처투성, 피투성이 되신 예수 얼굴은 형리들의 주먹질로 인한 타박상으로 일그러진 채 고개를 숙이시고 눈감으신 예수… 이 비참한 죽음은 과연 무엇을 보여 주고 무엇을 말해 주는가?
예수의 죽음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지를 말해 주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시는 분이시다. 목숨을 내어놓는 것은 전부를 내어놓음을 의미한다. 하느님은 당신을 전부 남김없이 우리에게 내어놓으시는 분이시다. 사랑으로…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의 목숨만큼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에는 하느님의 목숨이 걸려 있다. 나의 인생에는 하느님의 목숨까지 다하시는 정성이 담겨 있다. 이처럼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는 분을 하느님으로 모시고 사는 우리는 얼마나 복된 사람일까!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요한Ⅰ 4, 16)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예수의 죽음만큼 잘 드러내는 모습은 없다. 하느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아끼시는지를, 우리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 지를 예수의 죽음만큼 뚜렷이 보여 주는 것은 없다. 과연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예수의 죽음은 가장 아름답게 보여 준다. 그래서 예수의 죽음은 하느님 사랑의 좥최고의 드러남좦, 하느님 사랑의 '절대적인 계시(啓示)'인 것이다. 참으로 예수의 죽음에 하느님 사랑이 압축되어 있고, 그리스도교 신앙이 농축되어 있다. 예수의 죽음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수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하느님의 죽음을 맞이하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하나의 "모순"이다. 그러나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모순을 실현케 한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원래 당신에게 불가능하고 모순이 되는 죽음을 받아들이심으로써 당신이 얼마나 진정으로 사랑이신지를 보여 주셨다.
사람은 예수의 모습에 드러난 하느님 사랑, 특히 그분의 죽음에 드러난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영원히 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그 은혜를 영원히 다 갚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신비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은혜를 천만분의 일이라도 갚으려고 힘쓴다. 한평생, 끊임없이… 이것이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단 하나의 이유이자 목적인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 바치신 분을 하느님으로 모시게 된 것을 영원히 감사해야 한다. 우리를 당신의 목숨만큼 소중히 여기시는 분을 하느님으로 모시게 된 것을 한없이 고마워해야 한다. 만약 이 하느님의 마음을 그대로 깨달았다면, 우리는 어떤 고통과 역경을 겪는다 해도 하느님께 오로지 감사와 찬양을 드릴 것이다. 고통이 아무리 심하다 하더라도,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역경 속에 하느님 사랑을 믿기가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어떠한 고통과 역경 속에도 하느님이 우리를 당신의 목숨만큼 사랑하고 계심을 우리가 의심하지 않도록 하느님은 목숨을 바치신 것이다.
하느님 사랑은 예수의 죽음이란 고통으로 드러났듯이,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모양의 고통으로 드러난다. 하느님 사랑은 고통이란 "베일"로 덮인 채 주어진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고통과 역경 안에 하느님 사랑을 보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 복된 사람이다. 한 걸음 나아가 고통과 역경을 그대로 하느님 사랑의 표시로 감사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성인이다. 우리가 믿는 종교가 "십자가의 종교"이며 우리가 모시는 구세주가 "십자가의 예수"이심을 거듭 거듭 자기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하느님이 당신의 고통과 죽음으로써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두고 두고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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