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부터 새벽까지 포장마차 「사랑의 집」은 문을 연다. 낮에는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할 도로 한 켠을 허락받아 포장마차 다섯 집이 나란히 불을 밝히고 장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사랑의 집」은 그 중의 하나다.
포장마차를 기웃거려 본 이는 알겠지만 그곳에서 내어놓은 음식이라는 게 특별한 것은 없다. 배를 채우려고 들르는 사람보다 분위기가 괜찮아서, 혹은 가볍게 부담없이 포장을 열고 들어오는 곳. 「사랑의 집」은 유진 엄마의 소중한 꿈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아유 글쎄 우리 유진이 좀 봐요. 완두콩 까는 걸 도와준다고 옆에 앉더니 「콩이 알을 낳고 있어요. 조로록 푸른 콩은 형제가 되었어요」하고 금방 시를 읊고 있잖아요. 얼마전엔 「귀신」을 소리나는대로 쓰라는 숙제에 「이히히」라고 적어 놓고 맞다고 우기는 거예요』
글쓰기에 특히 소질이 엿보인다는 하나 밖에 없는 예쁜 딸. 유진 엄마는 딸 아이의 이야기를 할 땐 생기가 나고 웃음이 헤프다.
혼자서도 공부 잘하고 엄마 고생하는 줄도 알고 있고, 훌륭한 소설가가 꿈이라는 유진이. 그 딸을 생각하면 밤과 낮이 뒤바뀌는 생활, 술손님 때문에 마음 상하는 일이 있어도 참을 수 있단다.
딸이 백일장에서 또 상을 받았다는 날 저녁. 화덕에 꽁치를 구우면서 유진 엄마는 큰 소리로 말했다.
『문학소녀였던 유진 엄마의 꽁치 서비스예요!』
포장마차 「사랑의 집」은 구수하고 멀리 가는 꽁치 냄새처럼 엄마와 딸의 꿈이 익어가는 곳이다.… 현관 밖에서 이제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비디오 찾으러 왔어요』하고 정현이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정현이, 그는 영화감독이 희망이다. 아니 PD가 되겠다고도 했지.
배낭을 매고 우쭐우쭐 걷는 걸음걸이며, 굵은 목소리며, 시원스런 말투며 암튼 한 번 보면 기억할 수 있는 아이다. 제 때 회수되지 않는 비디오 특히 신작프로는 손님이 많은 저녁시간에 맞춰 수거해야 하는 일을 아르바이트하고 있단다. 아파트 단지를 자전거로 돌며 두 시간이상 일한다. 『우리 삼촌이 비디오 가게 사장이예요. 그래서 도와드리는 거죠. 제가 도움을 받고 있는 지도 몰라요. 저는 영화에 관심이 많아요. 영화감독이 되고 싶거든요』
『영화배우해도 되겠다. 지금처럼 잘 자라면 말이야. 얼굴도 잘 생겼구나』
내 칭찬에 정현이는 얼굴을 붉히는 듯 했지만 씩씩하게 말한다.
『저는요, 배우보다 감독이 좋아요. 우리나라가 부자가 되면 「쥬라기 공원」 같은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초등학교 6학년의 꿈이 흔들리지 않고 탄탄하기만을 기대할 순 없을지라도 이렇게 분명한 제 꿈을 말할 수 있는 아이.
그 아이가 귀엽고 대견해서 자주 보고 싶어진다.
『안녕하세요!』
필름이 든 배낭을 매고 줄장미 핀 담장 밖을 자전거 타고 가면서 활짝 웃는 정현이.
꿈이 있는 아이를 보는 건 기쁘다. 어린이의 꿈은 맑고 귀하기 때문이다.
또 그 속에 우리들의 희망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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